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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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2018-08-17 (금) 김갑헌/ 맨체스터대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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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우피치(Uffizi) 미술관에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미술관 전체의 분위기가 전에 왔을 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사람들의 흐름이 순조롭고 시설도 많이 개선된 것이 눈에 보였다. 2015년 젊은 독일인 아이케 슈미트(Eike Schmidt)가 미술관장으로 취임한 후 그는 이 비능률적 중세 미술관을 현대적 미술관으로 개선 했다고 한다.

새롭게 단장한 Room 10-14는 보티첼리(Botticelli)의 그림을 모아놓은 곳이다. 미술관 여기 저기에 걸려있던 그림들을 모아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람이 바로 아이케 슈미트라고 한다. 유명한 ‘비너스의 탄생’앞에는 여러 나라의 단체 관광객들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림을 감상 하기보다는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관광객들이 썰물철럼 빠져나간 후, 나는 그 그림 앞에 서서 다시 한 번 찬찬히 그림을 살펴보았다. 무수한 평론가들의 찬사가 떠올랐다. 고등학교 미술책의 커다란 한 페이지도 마치 유령처럼 어지러운 머릿속을 맴돌았다.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이 유명한 그림 앞에서 나는 마치 깊은 숲 속에서 길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 인가? 무엇을 왜 아름답다고 하는가? 이 그림은 정말 그렇게 아름다운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론이 삐그덕 거리며 다가왔고, 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칸트의 이성과 의지와 감성의 순서 논쟁이 소음이 되어 귓속을 채우는 듯 했다.

세상은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 차 있다. 하늘의 달과 별이 아름답고, 푸른 산 거친 들 우주 삼라만상이 아름다움 속에 있다는 것이 시인들의 노래요 예술가들의 제목이 아닌가? 아름답다고 보면 아름다운 것이지 아름다운 것이 따로 있나? 아니지, 아름다운 것이 따로 있다는 것이 플라톤의 생각이었다. 나는 그 중간에 서 있는 것 같다. 이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사람이라는 것도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다 아름답다는 뜻은 아니다. 아주 적은 수의 사람 들을 우리가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플라톤이나 맹자의 주장처럼 누구나 아름다움의 근본을 타고 났다고 해도 그것을 키우고 다듬지 못 하면 아름다운 사람이 되지 못하기 때문일 것 이다. 무엇이 된다는 것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선물이요 능력이다. 타고난 성품을 열심히 키우고 가다듬어 선하고 아름답게 된 적은 수의 사람들을 나는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보티첼리의 비너스가 아름다운 것을 인정한다.그러나 나는 그보다 더 아름다운 님을 알고 있다. 그림과 사람을 비교하는 불공평함이 있지만, 그림은 단지 사물과 사람의 그림자일 뿐이라는 것이 플라톤의 생각이었고 또한 나의 생각이다. 사람의 이성(理怯)이 헤아리는 진리와 진실함, 의지로 닦아가는 내적인 선(善)함이 항상 삶 속에 드러나는 그런 사람이 참 아름다운 사람, 미인 (美人)이 아닌가? 얼마전 무엇이 아름다운 것 인가 하는 질문에 진(眞)과 선(善)이 미(美)를 만든다라는 평범 명료한 말로 나를 깨우쳐준 그 님이 참 아름다운 미인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것이 단지 보기에 예쁘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름다움은 깊은 내면에서 샘솟는 진실함과 선함의 표상이요, 그것은 마침내 우리의 영혼을 떨리게 하는 긴장감으로 승화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빌헬름 빈델반트(Wilhelm Windelband) 라는 19세기 독일 사람은 진선미의 융합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거룩함(聖)에 이르게 한다고 생각했다. 아름다운 사람은 영적으로도 성숙한 사람이라는 말과 같다. 내가 아는 아름다운 그 님도 영적으로 성숙한 분 일까? 아마 그럴 것 이다. 기도로 영혼을 닦는다고 했으니까…

<김갑헌/ 맨체스터대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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