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천륜지락(天倫之樂)

2018-08-14 (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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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남성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칼을 휘둘러 중상을 입혔다. 한인 여성이 남편을 흉기로 찔러 중태에 빠뜨렸다. 패륜범죄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어제 오늘일은 아니다. 끊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심화되는 듯하다. 막장범죄 보도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인간의 기본인 도덕이 너무 쉽게 무너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륜을 벗어난 패륜범죄. 천륜을 저버린 흉악범죄. 반인간적 범죄는 인간성 상실이 주범이다. 욕설, 폭행, 살해 등 모두가 끔찍하긴 마찬가지다. 그로인해 인간과 혈육관계가 흩어지고 파괴되기도 매 한가지다. 다만, 인륜, 천륜, 도덕과 이성적 인간성을 지닌 한인이 다수라는 사실이 다행일 뿐이다.

윤리 윤(倫)의 원래 뜻은 ‘도리’, ‘질서’, ‘관계’ 등이다. 천륜(天倫)은 핏줄이다. 부모, 형제간이 대표적이다. 저절로 그렇게 되는 본능은 천륜에서 나온다. 인륜(人倫)이란 사람 사이에 지켜야할 도리다. 상하관계나 질서를 따지는 이성은 인륜에 가깝다. 부부, 친구, 사제 등이 그렇다. 인륜은 선택 관계로 이어갈 수 있다. 천륜은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끊고 싶다고 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결혼은 인륜지대사요, 자녀와 부모 간 효와 사랑을 천륜지대사라 하는 이유다. 부모와 자식 된 도리를 저버린다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인륜과 천륜은 가정에서 출발한다. 가족은 사회구성의 가장 기본적 단위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충족을 제공한다. 심적인 안정을 주는 터전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가화만사성’이라 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도 했다. 그만큼 가족이나 가정은 소중한 공동체다. 사회생활의 기본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한인상담기관엔 가정불화 상담이 으뜸이다. 이혼과 별거, 가족폭력, 가족구성원의 자살, 양육포기, 노인 학대, 청소년 문제, 패륜범죄 등은 변함없는 단골메뉴다. 날이 갈수록 가족해체가 더욱 앞당겨지는 요인이다.

주변에서 윤리도덕을 내팽개치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인륜과 천륜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이들이 대표적이다. 비즈니스를 차지하고자 혈육 간에 골육상쟁을 벌인다. 돈 문제에 얽히면 가족도 남이다. 부모가 자식을 나 몰라라 한다, 자식은 부모를 무시한다. 부부가, 형제들끼리도 돈이 먼저다. 가족도 친구도 돈 앞에선 소용없다고 여긴다.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그야말로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남’이니 인륜과 천륜간의 패륜이다.

삼강오륜(三綱五倫)은 한민족의 정서와 문화에 아주 깊은 영향을 끼쳐온 윤리요 도덕이다. 인간사회의 기본적인 관계를 정한 것이다. 오랫동안 사회의 기본적 윤리로 존중되어 왔다. 지금도 우리의 삶과 행위에 뼈 속까지 깊이 뿌리 박혀 있는 윤리 도덕이라 할 수 있다.

삼강(三綱)은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이다. 임금과 신하, 어버이와 자식, 남편과 아내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를 의미한다. 오륜(五倫)은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이다. 부자, 군신, 부부, 장유, 붕우 사이에 지켜야 할 기본적인 실천윤리를 뜻한다. 하지만 오늘날 삼강오륜(三綱(五倫)이 물구나무섰다는 표현을 자주한다. 그만큼 한인사회서 패륜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인륜과 천륜이 무너지면 패륜 밖에 길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인륜과 천륜을 항시 옆에 두고 살고 있다. 삶은 인간관계다. 인간관계는 다 이어져 있다. 그 관계가 곧 나의 자산이다. 인간관계가 좋아야 삶에 큰 보탬이 된다는 의미다. 효도하는 자식치고 성공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한다. 가정을 지키는 사람이 사회생활도 잘 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살다보니 딱 맞는 말이다. 항시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의미 역시 가족이 첫째다. 친지와 친구는 그 다음이다.

천륜지락(天倫之樂)은 부모 형제 등 혈족 간에 잘 지내며 즐거워하는 것이란 뜻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즐거움은 가족이 함께 하는 것이란 의미다. 패륜이 넘치는 이때에 가정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우치게 하는 말이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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