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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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해방의 감격을 상기하며

2018-08-11 (토) 주진경/은퇴목사·공군예비역 중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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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초근목피의 굶주림과 잔인무도한 일제의 굴레에서 벗어나 해방 된지가 73년이 된다.

마른 수수깡과 강냉이 대를 엮어세운 울타리를 제쳐 벌리고, 회푸대 마분지로 만든 종이 확성기를 대고“해방이 왔네, 해-방이 왔네...” , 창호지에 태극기를 그려서 대나무
막대기에 묶어 매고 휘날리며 동네 고삿길을 누비고 달리던 그 감격을 누가알까? 73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면서 세파에 시달려, 희어진 머리, 주름 잡혀 주글주글해진 얼굴, 새우마냥 구부러진 허리, 나이 들어 쇠잔해진 80 넘긴 그 세대의 민초들 가슴에는 아직도 그 감격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잘 살게 된 조국의 오늘의 현실에대한 서글픔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의 세월이 준 몫을 감당해 온 덕으로 나라는 이 만 큼 살게는 되었지만 국민 행복의 인식지수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아닐까?


그동안 광복절 경축 행사장에서 의례적으로 부르고 외쳐 오던 빛바랜 애국가, “동해물과...”와 “대한민국 만세”의 외침이 그 때의 뜨거웠던 감격을 새롭게 되찾으면 얼마나 좋을까? 애국심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사회 전반에 걸친 지도급 인사들의 비리와 부
정, 무의지, 부도덕이 넘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 순수한 해방과 자유 됨의 감격이 그 때처럼 자연스럽게 발현될 수 있을까?

작금, 바다 저쪽에 있는 조국의 정치, 경제, 사회의 현실을 넘겨다보면 탄식을 넘어 비탄을 금 할길 없다. 더욱 종교, 국가와 사회를 계도한다는 교회는 어떤가?

의(義)와 평강, 사랑을 외치는 크고 적은 교회들의 궁중음악회와 같은 찬양소리는 어디를 향해서 울려 퍼지고 있을까? 만민을 구제하는 하나님을 향한 찬양의 메아리는 궁중극장(Royal theatre)과 같은 교회 안에서만 들리는가, 아니면 힘없고 소외된 고난과 고통의 현장에도 평강과 사랑을 외치는 찬양의 메아리가 울려오고 있는 것인가! 음악회는 있으나 찬양은 들리지 않는다.

해방과 자유 됨의 감격이 빛을 바랜 것은 73년이라는 지나간 세월의 흐름의 탓이 아니라 자아(自我)성취, 숨지면 한 뼘 되는 땅에 묻히고 말, 이 적은 육적 몸의 성취욕 때문
일 것이다.

공익, 공덕(公益, 公德)의 겉옷으로 치장해 왔던 나와 나를 감싸고 있는 개인의 영달과 집단성취욕이 나라를 좀먹고 겨레를 번뇌케 하며, 역사적으로 새롭게 계대되어 가야 할 감격을 빛바래게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73년전 8.15 해방의 날에 우리 또래는 회푸대 마분지를 둘둘 말아서 만든 확성기로 동네를 돌면서 울타리 너머로 “해방이 왔네, 해-방이 왔네” 목이 아플 정도로 외쳤다. 2년전, 6월 25일, 포트리 Freedom Park에서 거행된 71주년 6.25기념행사에 다녀왔다.

얼굴은 쭈글쭈글해지고 허리는 구부러지고 보청기를 끼고... 현역 국군복장을 하고 나온 분도 있었다. 걷는 것도 행보가 활발치 못했다. 애국가를 부른 다음 조국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 순국 영령에 대한 취침 나팔소리가 울려 퍼질 때는 앞뒤에서 소리 없이 흐느끼는 오열도 들려왔다.

기념식이 끝나고 6.25 참전 용사들에게 나누어주는 기념 메달을 받고 돌아오는 나의 마음은 쓸쓸하기가 말할 수가 없었다. 오늘 날 이 흑암이 깊고 땅이 혼돈한 것과 같은 현실 세계에서 그 때의 감격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주진경/은퇴목사·공군예비역 중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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