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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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自畵像)

2018-08-08 (수) 소병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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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문예

언젠가, 내 오랜 지인(知人)이 나를 보며 이런 말을 했다.“너는 말갛게 들여다보여도 속을 만질 수 없는 유리병 같은 사람이야 ”. 하면서 또 다음 같은 말을 쏟아 냈다.“ 넌, 어떤 경우에도 꿀꺽 꿀꺽 넘어오는 분노를 잘도 참고 할 말을 차곡차곡 마음 한귀퉁이에 치부해 두는 재주를 가졌거든?

그것이 너에게 점점 무거운 짐이 될 것이라는 걸 알아? 그래서 때로는 침울한 네 얼굴이 자신을 괴롭게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지! 그리고 말 하는 낌새에 한마디 더 해야겠어. 넌 얼굴엔 없는 웃음을 입으로만 웃고 있는 때가 많지, 그럴 땐 나도 당황하게 돼, 아니다 싶으면 확 털어버리라고, 안 그러면 속병생긴다구, 알아들었어?” 이렇게 한참 너스레를 떤 그녀는 안스런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방싯웃었다.

나는 그 친구의 말을 떠올릴 때마다, 사람은 할 말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충고였음을 알고 있다. 할 말을 안 하고 사는 것은 또 다른 오해를 일으킬 조짐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난 어쩜 헛똑똑이인지도 모른다. 그 친구의 말대로라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저 그렇게그렇게 살아가는 얼간이라고 치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내 인생의 신조는 남이야 무어라 하던지 , 어떻게 나를 평가 하던지 나는 편한 마음으로 살고 싶은 것이다 .

대다수의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사방이 꽉 막히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경악을
피할 수 없는 일을 한번쯤은 당하고 살지 않는가, 그땐 피할래야 피할 수 없이 조여 오는 다급함에 주위 사람들을 원망하게 되는 것인지상정인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럴 때 “ 아니야 내 탓이야“ 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나는 너그럽게 세상을 보고 싶고 스스로를 너무 폄하(貶下)하지도 높이지도 않고 사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 한다. 다시 말해서 이것이 중용지도(中庸之道)요 내 몫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매사를 편안하게 돌려 버린다. 어쩌면 이런 삶의 태도가 우리 같은 평범한사람들의 일상에 군더더기 없는 삶의 안식처가 되는지도 모른다 .

작은 시냇물은 넓은 강물을 꿈꾸며 온갖 오물과 쓰레기들을 끌어안고 강으로 흘러간다. 불평 없이 그들을 감싸고 묵묵히 흐르고 나면 그 자리에 맑은 물이 흐른다. 강물이 그저흐르기만 하 는 도리를 지키듯이 사람도 삶의 상식과 평범의 기준을 가지고 그 덕목을 잘 지킨다면 누구도 거칠 일이 없을 것이다.

평범한 삶의 덕목으로 선한 길을 따라 등뒤에서 밀어주는 우애와 믿음에 의지 한다면
견딜 수 없는 부덕(不德)함이야 있겠는가?! 아직도 내 삶은 남아있고 그 남은 인생의 여
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 이웃과 가족들이 나를 둘러 싸고 신뢰와 사랑을 느끼며 살아가는 그것이 평범의 미덕이구나 생각이 든다.

나이 들어 세월과 함께 쌓여가는 후덕함에(나 나름대로) 감사하며 훗날 내 후손들이나
나를 알던 이웃과 벗으로 하여금 한없이 후(厚)했던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소병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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