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젠, 무슨 재미로 살지?”

2018-07-17 (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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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우승은 ‘아트 사커’ 프랑스가 차지했다. 결승에서 크로아티아의 유쾌한 반란을 저지했다. 4대2 이겼다. 1998년 자국개최 이후 20년 만의 정상탈환이다.

이번 월드컵에선 이변과 명승부가 속출했다. 다양한 기록도 남겼다. 개막전부터 무려 37번째 경기까지 0-0 무승부가 없었다. 연속 골로 팬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무득점 경기는 C조 3차전. 프랑스와 덴마크의 조별리그. 지루한 승부 끝에 골 없이 끝났다. 득점 없는 경기 기록이 멈췄다. 이전까지 월드컵 연속 ‘득점경기’ 기록은 26경기. 1954년 스위스 대회였다. 이번에 11경기가 추가된 셈이다.

페널티킥도 최다 기록. 총 29개가 선언됐다. 1990년 이탈리아, 1998년 프랑스, 2002년 한일대회의 18개를 훌쩍 뛰어 넘었다. 세트피스 골도 가장 많았다. 총 69골이 쏟아졌다. 1998년 프랑스 대회의 62골을 경신했다. 이번에 처음 도입된 비디오판독 시스템(VAR) 효과다. 물론, 각 팀의 변화와 반칙의 증가도 한 몫 했다. 반면 레드카드는 4장뿐이다. 월드컵 본선이 32개국 체제가 된 이후 한 자릿수 선언도 처음이다.


이번 대회 자책골은 12골. 종전 최다기록인 1998년 프랑스 대회의 6골보다 무려 6골이 더 들어갔다. 강한 압박 전술이 요인. 공인구 영향. 의견과 분석이 분분하다. 하지만 자책골 선수들의 ‘죽을 맛(?)’은 매한가지.
이번 월드컵의 최대 화제는 크로아티아다. 세계축구연맹(FIFA) 랭킹은 20위. 16강, 8강, 준결승 등에선 연장전 혈투를 벌였다. 16강과 8강전에서는 연장전에서조차 승부가 갈리지 않아, 피 말리는 승부차기까지 겪어야 했다. 비록 결승에서 프랑스에 패했지만, ‘발칸전사’의 진가를 제대로 발휘했다. 크로아티아의 루카 모드리치 선수는 골든볼(MVP)의 주인공이 됐다.

득점왕인 골든부트는 6골을 터뜨린 잉글랜드의 골잡이 해리 케인이 가져갔다. 1986년 멕시코 대회 득점왕 케리 리네커 이후 32년 만에 탄생한 잉글랜드 득점왕이다. 캐인은 절반인 3골이 페널티킥으로 기록돼 머쓱한 수상자가 됐다.
4강은 프랑스, 크로아티아, 벨기에, 잉글랜드 등 유럽국가의 잔치로 펼쳐졌다. 독일,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전통적 강호들은 수난을 겪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독일 중 한 팀도 4강에 오르지 못한 것은 1930년 월드컵이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축구공이 둥근 이율까?
대한민국은 1승2패의 전적으로 16강 진출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스웨덴, 멕시코에 패했다. 우승 후보로 꼽혔던 독일을 2-0으로 물리치는 ‘그라운드 반란’에 위안을 삼아야 했다.

“월드컵이 끝났으니, 이젠 무슨 재미로 살아야할 지 막막해요”, “월드컵 중계를 빠지지 않고 시청하다보니 쉽게 일손이 안 잡혀요”. “한국 선수들이 독일을 잡는 투혼을 발휘하는 모습 등이 뇌리를 떠나지 않아 집중력이 떨어져요” 등등등.

이제 월드컵은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한인사회는 6,7월 축구 열풍의 도가니였다. 대한민국의 16강 진출을 위한 단체응원전도 펼쳤다. 16강전부터 라이브와 재방을 통해 명장면을 ‘보고 또 보며’ 시간을 보낸 이들도 수두룩하다. 월드컵은 끝났다. 하지만 ‘월드컵 열기’를 억누르지 못하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니다. 아직도 감동과 흥분의 늪에 빠져 헤매고 있다. 월드컵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답답하고 허탈한 마음을 호소하면서.

뿐만 아니다. 직장에서도 후유증은 좀처럼 수그러들 줄을 모른다. 무더운 날씨와 함께 일찌감치 휴가를 떠나는 이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는 한인사회 곳곳에서 월드컵 후유증이 훨씬 심각한 양상을 초래할 지도 모른다.

월드컵 후유증은 갑자기 몰두의 대상을 잃어버린 결과라고 한다. 그래서 축구 대신 다른 취미나 일거리를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월드컵에 푹 빠져 있었다면 빨리 잊도록 하자. “이젠, 무슨 재미로 살지?”란 걱정도 얼른 버리자. 그저 예전처럼 일상으로 되돌아가자. 사는 재미는 바로 평범한 삶 속에 있기 때문이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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