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과정의 끝은 언제려나

2018-05-19 (토) 김명욱/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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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은 흐르고 세월도 흐른다. 강물과 세월만 흐르는 게 아니다. 인생도 흐른다. 인생만 흐르는 게 아니다. 지구도 흐르고 태양도 흐른다. 태양을 품고 있는 은하계도 흐르고 은하계를 품고 있는 우주도 흐른다. 모든 게 다 과정(過程/process) 속에 있다. 과정. 정체 혹은 정지 돼 있지 않은 흐름을 과정이라 표현할 수 있겠다.

시간이 약이란 말이 있다. 뜻은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는 의미다. 아픔과 고통이 있는가. 슬픔과 억울함이 있는가. 시간이 흐르면 회복될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회복이나 치유되지 않는 슬픔과 고통도 있다. 그런 고통과 슬픔은 마음에 담아 두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치유되기도 한다.

유기체철학(변화와 발전을 갖는 형이상학적 실재를 밝히는 철학)을 낳은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 화이트헤드는 <과정과 실재>(Process and Reality)란 책을 통해 과정이란 개념을 소개한다. 과정은 시간과 공간속에 나타난 사건이며 자연의 세계는 이와 같은 사건을 통해 유기적이며 창조적인 관계로부터 성립되었다고 본다.


화이트헤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철학자들은 영원한 본질(permanent substance)에 근거한 참된 실재(true reality)를 영원한 것으로 가정했고 과정이란 이에 거부되거나 종속된 것으로 보았다고 밝혔다. 즉 고전 존재론이란 실재가 변화되는 것을 부정하였다며 고정불변하는 실재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다고 본다.

우리네 삶의 흐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똑 같은 낮과 밤인 것 같아도 그렇지가 않다. 순간순간 실재는 변하여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은 다른 실재를 가지고 존재한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늘 변한다. 하루에도 수천수만 번의 생각을 하며 살게 된다. 생각의 과정이다. 순간순간 결단해야 하는 생의 과정을 통해 삶은 변화해간다.

실재(實在)하는 자체를 과정으로 본 화이트헤드. 불교의 가르침에 보면 제행무상(諸行無常)이란 말이 나온다. 제행이란 인연(因緣)화합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것을 뜻한다. 무상이란 ‘항상 함이 없다’란 의미다. 그러므로 제행무상이란 인연에 따라 형성된 모든 것은 인연이 다하면 변하여 사라지게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무상하기에 고(苦)이며, 무아(無我)라며 자신이 지금 지니고 있는 어떤 것도, 즉 내 몸까지라도 변하여 사라지는 것이기에 결코 애착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란 가르침이 담겨 있다.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한 마디에 담고 있다 하겠다. 인간 한 평생 잠깐이요, 권력이나 금력도 잠깐이니 집작을 버릴 것을 권하는 제행무상이다.

변화무상하게 흐르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디지털 시대. 어디를 가도 디지털 시대의 첨단기기인 핸드폰(Cell Phone)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 10년 전만 해도 이렇게 까지는 보급되지 않았었는데. 아날로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태양과 달을 보며 위로를 삼아야 하나. 그러나 태양도 변한다.

기존의 태양의 수명(123억년)을 제치고 새로운 태양 수명이 다국적 과학자들에 의해 발표됐다. 지난 7일 네이처 어스트로너미 지에 실린 글. 앞으로 50억년 후에 태양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50억년 후. 그 때, 누가 살아남아 있으랴만. 징그럽게 매일 쏟아져 나오는 북미정상회담에 관계된 것들. 남북관계에 관한 뉴스도 없겠지.

다중 우주론이 아닌 단 하나의 우주가 있다면 그 우주 속에 아직까진 유일한 생명체의 존재를 가진 지구. 지구 안의 모든 생명체 중에서도 또 유일하게 문자와 문화를 개발해 온 인간이란 실재. 앞으로 얼마나 더 존속할까. 10만년, 100만년, 1,000만년, 1억년. 스티븐 호킹은 1,000년 안에 지구는 종말을 맞이할 거라 했는데.

이유는 핵전쟁, 대기온난화, 유전자 조작 바이러스 등이다. 이 외에도 인공두뇌에 의해 만들어진 로봇들이 인간을 멸망시킬 수도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일구어 낸 인간의 욕심. 끝이 없다. 강물도 흐르고 세월도 흐른다. 인간도 흐르고 지구도 흐르고 태양도 흘러간다. 만사가 다 과정 속에 흐르는 우주. 언제가 그 과정의 끝이려나.

<김명욱/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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