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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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말의 품격

2018-04-02 (월) 문주한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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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고추김밥 하나만 주시겠어요?" 뉴저지 사무실 출근길, 김밥 집에 들렀다. 사무실 근처에 도 다른 김밥집들이 있지만, 난 멀어도 그 집이 좋다. 한가지,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반말만 빼고. "뭐?" 이렇게 말이 짧은 사람들이 어디 여기뿐이랴. "... 고추김밥 하나요."

요새는 세금보고 철이라서 그런지, 전화 질문들이 많다. 오죽하면 얼굴도 모르는 내게까지 전화했을까 싶어서, 최대한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 중에는 전화로는 쉽게 답변할 수 없는 질문들도 많다. '머리가 심하게 아픈데 어떻게 하면 되냐?'고 병원에 전화했을 때, '그러면 타이레놀 먹으라.'고 무책임하게 답을 줄 의사가 어디 있겠나. 답변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다.

더욱이 요새는 상담 내용을 녹음하는 손님들이 늘어서, 그리고 그 녹음 파일을 단체 카톡 방에까지 올린다고 하니, 말 한마디가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모른다. 탈세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떼를 쓰는 전화도 있다. 침착하게 달래서(?) 끊으려고 하면, '되게 비싸게 군다.'는 핀잔을 들어야만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같은 전화 질문인데도, 일부러 찾아서 도와주고 싶은 목소리들도 있다. 왜 그런 차이가 날까?


말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성경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했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부처님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면 입안에 도끼가 함께 생긴다. 그것을 잘 간수하지 않으면 도리어 제 몸을 찍나니, 그것은 세 치 혀를 잘못 놀리기 때문이다.'라고 가르쳤다.

말은 마음을 담아낸다. 말은 마음의 소리다. 때문에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사람의 품성이 드러난다.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가고, 끝내 만 사람의 입으로 옮겨진다. 지금은 ‘말의 힘’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다. 날카로운 혀를 빼, 칼처럼 휘두르는 사람은 넘쳐나고, 자극적인 이야기를 폭포수처럼 쏟아내는 능변가는 홍수처럼 범람한다.

어느 책에 보니, 말에는 귀소본능이 있다고 한다. 사람의 입에서 태어난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냥 흩어지지 않는다. 돌고 돌아 어느새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몸으로 다시 스며든다. 입이 아닌 귀를 내어주는 것. 그것이 상대의 마음을 얻는 방법이다.
비즈니스의 성공은 결국 소비자의 마음을 얻는 것. 소비자의 마음을 얻으려면 그들의 말을 듣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말은 그렇게 충분히 들은 뒤 서로 준비되었을 때 하되, 거기에는 품격이 담겨져 있어야 한다. 그 사람의 말이 쌓이

<문주한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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