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하늘을 쳐다보며

2018-02-20 (화) 한재홍/ 목사
크게 작게
쳐다보았다. 다른 때보다 달이 훨씬 커 보였다. 일 년에 몇 번씩 있는 수퍼 문이었나 보다. 솔직히 말해 일 년에 몇 번 하늘을 쳐다보면서 살았는가? 이민 생활 속에서 힘들게 살다보니 하늘 보고 여유있게 살 날이 없었다.

참으로 우리는 이민의 초기, 또 자녀들을 위해서라면 눈 코 뜰 사이 없이 살아온 삶이 아닌가! 그래서 오늘이 있고 우리 자녀들의 현 주소를 만들지 않았던가? 힘든 과거가 미국을 바르게 세웠고 이만큼 터전을 가꿨다.

음력 새해다. 이제는 우리도 하늘을 쳐다보며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 제법 자란 우리 2세들의 현주소가 대견하기도 하고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라는데 의심이 없다.


2세 주한 미국 대사도 배출하기에 이르고 각 분야에서 각광을 받으며 뛰고 있는 우리 자녀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흐르고 있다.

지금은 내버려 두어도 제 앞길 개척해 갈 능력들을 지닌 채 한인사회의 기틀이 세워졌다. 몇 년 전만 해도 심방을 다닐 때 대부분의 가게들이 생선가게, 채소가게, 노동집약적 수고의 사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틀이 달라졌다.

이제 하늘을 쳐다보며 살, 나름대로 자격이 갖춰졌다. 하늘은 그냥 보이는 것이 아니라 허리를 펼 때 쳐다보게 되고 보이게 된다. 1세들은 그만큼 정신없이 살았다는 것이다.
전에는 운전하다 경찰이 차를 세우면 웃기만 했지만 지금은 나름대로 한마디 건네는 처지가 되었다. 그리고 양복을 입을 일이 있었던가? 기껏해야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예배하러 갈 때 양복 찾아 입었던 것이 전부가 아닌가? 그런데 요사이는 그런대로 세탁소를 들리게 된다.

길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아직은 그 나이가 아닌데” 했더니 선뜻 나오는 말이 내 가슴을 내리쳤다. “하도 오랫동안 허리만 구부리고 일을 하다 보니 허리가 이렇게 굽어 버렸다” 고 했다.

우리 1세들의 고생의 증표였다. 두고두고 가슴이 저려온다. 언제 한번 그 밝은 하늘 쳐다보며 제대로 허리를 펴본 일이 있었을까? 희생의 대명사가 되어 우리 앞에 서 있는 반늙은이. 한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세워야 할 한인 동상이다.

어디에 놀러라도 가고 싶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걸음걸이며 활동이 여의치 않다. 솔직히 말하면 언제한번 자식들 손잡고 동네 공원에라도 나가본 적이 몇 번이던가? 구경도 젊었을 때 해야지 늙으면 힘이 없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렇게 살만한 여유라든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자식의 입에 밥 들어가고 학교 가는 것이 대견하게만 생각하며 살다보니 세월은 서 있지 않고 흘러가 버렸다. 언제나 한 사회를 세워가는 데는 희생과 헌신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제는 젊은이들이 어른을 대접하고 위로하는 풍토가 마련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늘을 쳐다보며 희망을 노래하며 즐길 자격이 있다. 이 나이에 어떤 부모는 손자 손녀보기에 허리가 더 굽는다고 비명 같은 즐거움을 외친다. 못 말릴 일이다. 자식 길러 놓으면 다 된 줄 알았는데 더 큰 짐이 기다린다고 하더니.....

하늘을 쳐다보며 달빛도 감상하는 여유 있는 삶을 살자. 모든 짐을 스스로 짊어지지 말고 하나씩 벗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허리를 펴고 후회 없는 삶을 만들어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 자녀들은 자기 몫을 감당할 만큼 성숙되었기에 이제는 나를 돌아볼 시간이다. 인생의 마무리를 위해서…

<한재홍/ 목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