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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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국 한 그릇

2018-02-16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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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살아도 한국 고유의 명절 설날은 잊지 않고 지내고 있다. 뉴욕시 모든 공립학교도 16일 설날(Lunar New Year)을 맞아 일제히 휴교를 했다. 2016년부터 3년째다.

설날엔 아무리 바빠도 떡국 한 그릇을 먹어야 덜 섭섭하다. 고국과 고향을 멀리 두고 살아도 뿌리 의식, 존재감, 일종의 일체감을 떡국 한 그릇에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물에 불린 쌀이 담긴 커다란 다라이를 머리에 이고 방앗간으로 간 어머니가 오랜 시간 후 김이 무럭무럭 나는, 길고 새하얀 가래떡을 담아 머리에 이고 오던 것이 생각날 것이다. 건강과 장수를 상징하는 이 가래떡이 살짝 굳으려 하면 어머니는 밤을 새워 일정한 크기로 썰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대청마루에 놓인 커다란 통에 동글동글 썰린 떡이 넘치도록 그득 담겨있던 모습은 지금도 보기 흐뭇한 기억이다.


이 하얀색은 새해를 시작한다는 새로움, 좋은 기운을 뜻한다. 즉 새해 밝음의 뜻으로 흰떡을 사용하고, 떡국의 떡을 둥글게 하는 것은 둥근 태양을 상징한다고 한다.

며칠 전 한국의 친구는 카톡으로 이번 설날은 차례를 지내지 않고 가족 여행을 가기로 했다는 낭보(?)를 전해왔다. 40여년간 학교 교사를 하면서 시아버지 기일이나 추석 명절이 되면 며칠간 나 죽었소 하고 음식을 해대던 그녀는 하루만 반짝 할 뿐 먹지도 않는, 산처럼 쌓인 전과 부침개 등을 보면 늘 화가 치밀어 왔다고 한다.

이렇게 30년을 노력 봉사하였더니 드디어 시어머니가 먼저 “우리도 이제 명절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자”고 말했다는 것이다. 시어머니가 앞장서 말하니 남편도 동조할 수밖에 없어 이번 명절에 제주도행 가족여행을 간다고 했다. 2월 제주에는 봄꽃이 활짝 이라며 좋아라 했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추석이나 설날 연휴동안 국내여행도 가지만 아예 일본이나 동남아, 미국으로 까지 해외로 떠나는 것이 유행이라 한다.

이미 동그랑땡, 부침개, 떡은 전화 한 통이면 언제 어디로든 배달이 되고 설날 차례상 음식 전문 사이트나 제수용품 인터넷 매장이 성황을 이루고 심지어는 여행을 간 숙소에서 주문한 차례상으로 조상을 모신다고도 한다. 나 혼자 산다’는 이들도 편의점마다 명절음식 도시락이 얼마나 잘 나오는지 과거 명절이면 식당이 문을 안 열어 혼자서 라면 끓여 먹으며 쓸쓸해 할 일도 없겠다.

특히 놀란 것은 아버지, 어머니의 기일에 따로 제사상을 차리지 않고 기일 중 하루를 정해 같이 지내기도 하고 아예 기일은 생략하고 추석과 설날에만 차례 지내는 가정도 점차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삶의 지혜라고 해야 하나, 실용적인 선택이라고 해야 하나? 추석 명절에도 굳이 차례 지낼 필요가 있냐고 해야 하나? 집집마다 가풍이 다르고 조상을 모시는 방식이 차이가 있다 보니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 할 수가 없다.


다만, 세상은 변했고 앞으로도 계속 변해간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설날 풍속도는 달라져도 설날에 떡국을 먹는 것은 변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이 떡국은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아이들의 나이를 물을 때 “떡국 몇 그릇 먹었느냐?”고 묻기도 한다.
어려서는 어머니가 끓여준 떡국을 먹었고 성장해서는 겨울이면 수시로 떡국을 끓여먹으며 살고 있다. 과거 어머니가 끓여준 떡국은 참 맛있었다. 동글동글 예쁜 떡은 입안에서 쫄깃쫄깃했고 소고기와 지단 고명은 얼마나 예쁜지, 그 달큰 하고 깊은 국물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동안 내가 끓인 떡국 맛은 어땠을까? 늘 정신없이 살다보니 건성 떡국 흉내만 낸 것은 아닐까? 갑자기 식구들한테 미안해진다.

앞으로는 따뜻한 떡국 한 그릇이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일 수 있을 정도로, 감동을 자아낼 수 있게 요리법을 나름 개발해 볼 까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정성이란 것도 알고 있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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