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성공’에 짓밟힌 꿈

2018-02-15 (목) 오신범/ 뉴욕가정상담소 청소년 프로그램 담당 및 카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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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가정상담소 일을 통해 만나는 모든 청소년들에게 나는 항상 같은 질문을 던진다. “하고 싶은 게 뭐니?” 혹은 “꿈이 뭐니?” 상위 10퍼센트에 드는 학교들에 다니며 우수한 성적을 자랑하는 학생들로부터 늘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몰라요.”

질문을 조금 바꾸어 다시 “좋아하는 게 뭐니?” 혹은 “나흘 동안 자고 먹고 쉬면서 한 가지만 한다면 무얼 제일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니?” 라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각기 다른 관심 분야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퍼즐 맞추기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고 싶은 친구가 있는가 하면, 반려동물을 치료해서 건강하게 주인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친구도 있다. 또 어떤 친구는 세대의 벽을 뛰어넘어 누구라도 빠져들 만한 장편소설을 쓸 거란다. 하지만 곧, 기대와 흥분에 사로잡힌 얼굴들에 첫 질문에 보였던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건 너무나 터무니없는 일이라며.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르는 게 아니다. 꿈이 없는 게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허락받지 않은 것이다. 그곳에 미래가 있다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것이다. 아니, 그곳엔 미래가 없다고만 들어온 것일 것이다.

많은 청소년들을 만나 보았듯 그들의 부모님들도 만나보았다. 수많은 부모님들을 만나보았지만 그 자리에서 자녀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때때로 들리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말들이 있다.

아이들 직업은 ‘학생’이고, 그렇기 때문에 공부에 열중하는 것이 당연하는 말, 아이를 키우는 일에 있어서 공식이 있다면 좋을 수도 있겠다는 말. 어릴 때 공부의 중요성을 잘 가르치면 어른이 되어서도 출세하고 아이에게도 좋지 않겠냐는 말이 들린다.

몇 년간 이와 같은 개별 혹은 그룹 모임을 꽤나 자주 가졌지만, 자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장래희망이 무엇인지, 또 어떤 것을 격려해주고 싶은지를 이야기한 기록은 거의 없다.

<오신범/ 뉴욕가정상담소 청소년 프로그램 담당 및 카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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