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린도 전서 13:13)고 단언함으로써 바울은 사랑을 기독교 교리의 중심에 놓았다. 그래서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일컫는다.
사랑은 모든 소설의 주제였으며, 모든 노래도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읊는 것이다. 가장 달콤한 말은 첫사랑, 가장 서글픈 말은 짝사랑, 사랑을 나타내는 한자는 세 자가 있는데, 사랑 애(愛), 인심 정(情), 그리울 련(戀)이다.
2000년 초 한국 최고의 가수로 불렸던 더원(The One)의 히트 송 ‘사랑아’의 가사 중 “버릴 수 없는 사랑이 서러워 또 이렇게 운다”는 말이 나온다. 애인이 멀리 떠나도 사랑은 공간을 초월하여 끈질기게 이어진다. 한국의 고전 춘향전에서 춘향의 사랑은 모든 고초를 극복하고 시간을 초월하고 있다.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 박사는 ‘사랑의 3각형’이란 이론’을 말하였다. 친밀감, 열정, 헌신, 이 세 요소가 3각의 정상을 이룰 때 사랑이 완전해진다는 이론이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생애가 바로 친밀 열정 헌신이 하나가 된 희생의 모습이었다.
심리학자 아서 아론은 “침묵 중에 상대의 눈을 4분 동안 바라볼 수 있다면 진실한 사랑이다.”고 말하였는데 요즘은 쇼를 너무 잘 해서 이 말을 믿었다간 큰 코 다칠 수도 있을지 모른다. 부부 사이 혹은 애인 사이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알려면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질문에 대답해 보면 된다.
1. 사랑의 주체가 되는 자기 자신을 향하여 자신 있게 추호의 부끄러움도 없이 웃을 수 있는가? 2. 날마다 내가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좋은 방법을 찾고 있는가? 3. 중요한 사안(事案)에서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품고 있는가? 4. 서로의 말과 행실을 확실히 믿고 있는가? 5. 서로 승패를 따지지 않고 있는가? 즉 내가 이겼다. 네가 졌다 식의 승부의식을 초월하고 있는가? 6.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해결의 방향으로 적극 노력하고 있는가? 7. 피차의 실수에 대하여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가?
사랑의 근본은 나를 버리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것은 결단이며 모험이다. 사랑은 감정으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로 출발한다. 내가 좋아한다는 그 자체만은 아직 사랑이 아니다. 좋아한다는 것은 자기의 욕구가 채워진데 대한 만족감을 뜻하므로 도덕적으로 의미를 갖지 않는다. 사랑은 나의 요구를 버리고 상대의 요구를 충족시키려는 것이다. 일이 지난 뒤의 쾌감을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있기 전의 각오와 결단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비겁한 자는 사랑을 할 수 없다. 게으른 자도 사랑을 성취시키기 힘들다. 결연히 일어서는 용기에서 사랑의 열매를 찾는다.
무엇이 사랑입니까? 마음 상하는 일을 당하였을 때 침묵하는 용기입니다. 내 음성이 떨려 올 때 기도하는 인내입니다. 지저분한 이야기에 귀머거리가 되는 것이고, 도움이 필요한 구석에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내게 필요하니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때 묻은 사랑,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깨끗한 사랑. 사랑이 있으면 그 날이 밝습니다. 우울한 하루였다면 사랑 없는 하루였습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평화가 있습니다. 너와 나 사이에 파도가 넘실거리는 것은 사랑의 동아줄이 끊겼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을 찾지 마셔요. 사랑하면 하나님이 나타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장소는 사랑이 빠진 구석입니다. 토론도 협상도 싸움도 결코 당신을 만족한 해결의 길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유일한 해결의 길, 그것이 사랑입니다. 이길 방안을 연구하지 마셔요. 사랑하면 반드시 이기게 됩니다. 사랑만이 법을 완성합니다. 사랑하셔요. 사랑은 죽음보다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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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