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는 대한민국의 대표

2018-02-09 (금) 정준희/우간다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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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우간다의 도로에서 자동차를 운전 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도로포장 상태가 나빠서 자동차에게 미안할 정도로 아스팔트 도로의 절반이 깨어져 나갔다. 운전자 쪽의 바퀴는 아스팔트 위에, 보조자 쪽의 바퀴는 웅덩이가 깊이 패어있는 흙길을 달리는 일이 빈번하다.

밤에 이런 길을 달리다 낭패를 볼 뻔한 적이 있다. 나는 흙길을 달리던 한 쪽 바퀴를 아스팔트에 올렸다. 이 말은 운전자석 쪽의 바퀴는 이미 중앙선을 넘어가 달린다는 말이다. 멀리서 오토바이가 오고 있었다. 오토바이가 내 차 옆을 지나칠 수 있는 공간이 있다고 판단했다.

오토바이가 점점 다가올 때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덮치는 듯 했다. 갑자기 섬뜩했다. 트럭이었다. 순간적으로 핸들을 틀었다. 위기를 모면한 듯 싶었다. 그러나 순간 보행자가 나타났다. 다시 반대로 핸들을 급하게 돌렸다. 다행이었다. 트럭은 이미 지나갔고, 등줄기가 땀으로 흠뻑 젖었다.


트럭의 운전자 쪽 헤드라이트가 작동되지 않았던 것이다. 트럭 운전자에게는 한쪽 라이트가 없어도 운전하기에 불편함이 없었던 모양이다. 우간다의 많은 운전자들은 본인만 생각을 하는 경향이 짙다. 상대방의 안전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둠이 내려와도 본인이 볼 수 있다면, 라이트를 켜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 결국 나를 지키는 운전 습관이다.

사람에게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처럼 앞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 사람들은 이렇게들 말한다. "내가 볼 때는...," "내 눈에는...," "나의 시선은 밖을 향해 있다." 나름 다른 사람과 사물을 판단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내 자신을 보는 눈이 내게는 없다. 나의 문제에 신경 쓸 이유가 없다. 내게는 내가 문제되지 않는다. 마치 우간다의 정비하지 않는 차를 몰고 운전하는 사람들처럼! 사고는 잠재되어 있다. 언젠가 다른 사람이 나에게 돌진해 올 수도 있다.

나를 점검 해볼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 가를 귀 기울여 보는 것이다. 종종 우리는 잔소리라는 것을 듣는다. 잔소리 듣는 만큼 나는 그 만큼의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듣기 싫은 말들이 많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변론하고 싶을 것이다. 내가 언제 그랬냐고 따지고도 싶어 질 듯하다. 하지만 나 아닌 다른 사람의 눈에 그렇게 비쳤다면, 그 만큼이 나의 상태라고 볼 수도 있다. 비판을 들을 때 스스로의 점검이 늦어지면 비난을 듣게 된다.

나는 대한민국의 대표로 우간다에서 살고 있다.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대한민국의 대표로 살아가고 있다. 우간다로 떠나 올 때 한국 정부가 내게 대표를 위임하지 않았고 우간다 정부 역시 나의 존재를 알 리가 없다. 그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대한민국의 대표라고 생각한다. 아니 대표라고 믿고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나를 만나는 우간다의 사람들은 나를 통해서 대한민국 전체를 해석하기 때문이다. 나의 사소한 행동하나로 한국의 이미지가 좋아 질 수도, 아닐 수도 있기에 오늘 나의 언행을 살펴보아야 한다.

나는 14억 가까이 되는 중국사람 중에 만나서 대화해 본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만하다. 하지만 나는 그 몇 안 되는 사람들로부터 중국인은 이러이러 하다고 전체를 해석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국익을 위하여 사는 길이 멀리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자기를 점검할 줄 알고, 어제보다 오늘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애국자라고 생각된다.

<정준희/우간다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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