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백장미 물결

2018-02-07 (수)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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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건 하면, 단연 세계 각처에서 이어진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고발 캠페인이 아닐까 한다. ‘미투 운동(#Me Too•나도 피해자)’으로 언론에 회자되면서 잘 알려진 이 캠페인은 미국에서 시작돼 전 지구촌에 논란을 지피기 시작했다.

심지어 지난해 말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 미투 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을 ‘2017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기 까지 했다. 이 여성들은 이른 바,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 피해 경험을 공론화한 ‘침묵을 깬 사람들(The Silence Breakers)‘ 할리우드의 영화거물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문 스캔들이 미국 연예계를 강타하면서 일어난 반향은 피해자인 여배우 알리사 밀라노(45)가 트위터에서 ‘미투(#Me too)‘라는 고발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미투 운동은 ‘성폭력을 추방하자’는 의미로 전원이 검은 색 드레스 복장을 하고 참석한 지난 제75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 이어 그래미 어워즈에서도 같은 취지로 모두가 흰색드레스에 백장미를 옷에 달거나 손에 들고 나와서 할리우드에 만연된 성폭력을 비판하면서 갈수록 저항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후 각계각층의 유명인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심지어는 교수들조차 자신들이 겪은 성적 피해 경험을 털어놓기 시작, 마치 여성이라면 피해를 보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느껴지는 사례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인도에서는 반대로 유명 작가 드방파탁이 과거 본인이 여성들을 상대로 부적절하게 처신했던 행동을 트위터에 털어놓는 일도 생겨났다. 크게 당하기 전에 미리 매를 맞고자 하는 심리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자신이 저지른 행위가 잘못된 점임을 인정하고 나서는 그런 양심적인 자세는 그래도 봐줄 만하다. 대부분의 가해남성은 끝까지 그런 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발뺌을 하는 사건들이 대세이기 때문이다.

이에 영향을 받은 탓인가. 한국에서도 성추문, 성희롱, 성폭력이라면 여성들이 아무리 당해도 사회 분위기는 “피해자가 오히려 꼬리를 쳐서 그렇지...” 하는 쪽으로 바뀌면서 가해 남성들이 저지른 사건을 은폐 혹은 물 타기 하는 식으로 덮어버리려고 마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이제 한국에서도 최고 지성인 위치의 ‘권력의 꽃’이라는 여검사들까지 이 문제를 들고 일어났다. 창원지검 통영지청 서지현 검사가 검찰내 고위 간부의 성추행을 폭로하고 나선 것이다. 이제 한국사회도 서 검사의 용기를 지지하는 분위기가 대세이고, 이를 계기로 한국에서도 미투 캠페인이 들풀처럼 번져갈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피해를 당하고도 ‘쉬 쉬’하며 가슴앓이만 하고 있던 많은 여성들 사이에서 이제 용기있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상아탑 안에서도 성범죄가 비일비재하다. 명문대인 프린스턴 대학교의 한 교수가 한 한인여성 유학생에게 부적절한 성적행위를 범했다고 하는데, 그 교수는 솜방망이 처분만 받고 사건은 흐지부지 넘어갔다. 그 유학생은 얼마 전 지도 교수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고발했다.

얼마 전 한국에서는 어느 대학교 명예총장이 여성 직원을 20년간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한 사건도 있다. 이 대학 여성 교수 두 명이 이 명예총장으로부터 성추행, 성희롱을 당했다고 진술한 것이다. 여성들의 이런 피해사례는 얼마나 더 늘어나야 끌이 있을까. 아마 이어도 이어도 끝이 없을 것이다.

이곳 한인커뮤니티에서도 분명 예외가 아니다. 소위 고위직 직함을 가진 일부 한인남성들의 소위 권력형 성폭행, 성추문 등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단체장은 물론, 심지어 사회를 계도해야 할 위치의 교계 목회자 사이에서도 그동안 심심치 않게 성추문, 성폭행 사례들이 있었다.

한인사회야 말로 이제는 더 이상 피해를 당한 여성들이 어둠 속에 있지만 말고 여성인권 보호의 상징이 된 미투 운동에 동참해 당당하게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한다. 아픈 환부를 도려내야 통증도 가시고 우리 사회도 함께 건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피해여성 모두가 백장미를 용기있게 손에 들 때 가능한 일이다.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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