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내가 한 영어공부

2018-02-06 (화) 정강 밀러/머시 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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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체스터 칼럼

보스턴에서 대학원 첫 학기를 시작할 때였다. 학교 엘리베이터 안에서 옆에 있던 미국 여자분과 날씨 얘기를 하고 있던 중 그분이 나보고 뉴욕에서 왔냐고 물었다.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으니, 그분 대답이 내가 말을 빨리 해서 그렇게 생각했다고 했다. 영어가 서툴렀던 나에게는 그 말이 칭찬으로 들렸다. 사실은 어려운 영어 발음들을 대강하다가 보니 말을 빨리 하는 듯이 들렸던 게 아닌가 싶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입시 위주 영어 교육으로 수많은 문제집을 풀고 단어와 문법을 암기했다. 어렵게 배운 영어였지만, 다른 과목 보다는 의욕을 더 가지고 공부를 했던 기억이 난다. 영어를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화가 났을 때나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는 화장실에 가서 아는 단어 문법을 써서 영어로 한참 동안 혼자 중얼거리곤 했었다. 몇 년을 하다 보니 영어 구어 실력 향상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일기도 영어로 쓰기 시작했다. 쓴 일기를 얘기 하듯이 읽어보는 습관을 가지면서 내 영어 실력은 점점 늘어났다.


대학 4년 동안 학원에서 일주일에 3번씩 새벽 영어 대화반과 저녁 영어 듣기반을 열심히 다녔지만, 혼자서 영어로 말하고 일기를 쓸 때 영어가 가장 재미있었고 머리에도 쏙쏙 들어왔다. 그 당시에는 몰랐었는데, 제 2언어 교육학을 공부하면서 나의 공부 방법이 왜 성공적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에게 영어는 감정을 표현하고 추억을 기록하는 도구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선 서투른 영어로 감정을 표현하거나 일기를 쓰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표현에 맞는 어휘, 구문, 관용구를 찾기 위해 두꺼운 영영 사전이 닳도록 많이 사용했고, 영어 표현이 어색한 문장은 괄호 안에 한국어로 써놓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영어로 말하고 쓴 이야기들이 나에게 관심과 의미가 있는 내용들이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옛날 일기장을 보면서, 나의 모국어가 아닌 서툰 외국어로 어떻게 감정묘사를 잘 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한 문법과 어휘, 짧은 문구들은 일기라기 보다는 한편의 시를 읽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감정으로 느끼고 나에게 의미가 있는 이야기들을 표현하는데 영어는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이렇게 영어라는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긍정적이고 좋은 경험들이 결국 더 많은 동기부여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 관심이 있고 의미가 있는 일들을 생활 속에서 찾아 언어로 그 생활의 한 부분을 표현했다.

이런 방법은 내가 다른 외국어를 배울 때도 성공적으로 적용을 했고, 지금은 딸아이의 한국어 공부에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우선 아이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며,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해 조금씩 배워가도록 하고 있다.

<정강 밀러/머시 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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