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알프스의 소녀(원제:하이디)

2018-02-03 (토) 정정숙/전직 공립학교 교사
크게 작게

▶ 뉴저지 자문위원 글마당

나는 영화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좋아하면 보고 또 보는 습관이 있다. 소설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는 5학년 때 만나서 한글로 두 번, 며칠 전에까지 영어로도(원본에 가장 가까운 번역본) 두 번 읽었는데 책을 읽는 내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어려서 하이디를 만나러 알프스에 꼭 가고 싶었고 그 생각은 퍽 오랜 세월 지속되었다. 하지만 정작 알프스를 가보게 된 것은 겨우 작년이었고 아름다운 그곳에서 하이디는 못 만났지만 미국 이민초기, 큰 딸이 초등학교 다닐 때 꼭 하이디 같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만나기는 했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하이디가 어른이 되었으면 이런 모습일 것 같다는 마음이 강하게 드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스위스 사람이 아닌 루마니아인이었고 하이디가 아닌 Mrs. Corina Hudson이었다.

통통하며 늘 사람 좋은 웃음을 웃는 허드슨은 큰 딸의 피아노 선생이었다. 딸은 아주 어려서 피아노를 내 후배로부터 배웠는데 레슨받기 원하는 학생이 지나치게 많아지자 후배는 나에게 다른 선생을 알아보라고 했다. 하필이면 왜 내 딸을 그만두게 하느냐고 내심 놀라고 섭섭해서 묻자 딸은 피아노를 잘 치니 누구에게서든 배울 수가 있고 또 나와 자기는 가까운 사이이니 우선 내 딸부터 그만두게 한 것이라고 했다.


어린 딸은 왜 못 다니게 하는지를 몰라 마음의 상처를 받았던지 몇 년 동안 누구에게서도 피아노를 배우지 않겠다고 버텨서 내 애를 태우게 했다. 그러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허드슨 선생을 알게 되며 딸이 마음을 돌렸다.

허드슨 선생은 딸이 피아노에 소질이 많다며 좋아했다. 남편이 일을 잠시 쉬었던가 해서 피아노 레슨비가 내게는 부담으로 다가온 적이 있었다. 잠시 피아노 수업을 쉬겠다고 했더니 허드슨 선생은 레슨비는 걱정하지 말고 레슨비가 마련될 때 후불로 내면 된다며 거듭거듭 딸을 보내라고 당부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세 달을 다녔다. 세 달 뒤에 레슨비를 가지고 가니 자기는 레슨비를 안 받은 적이 없다며 막무가내였다.

허드슨 선생은 그 밖에도 병들어 버려진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다 돌봐 주었고 새들에게도 마음을 써서 빈 새집에 모이를 놓아두곤 했다. 늘 바빠해서 살펴보면 음식을 해서 의지할 곳 없고 아픈 할머니들을 찾아다니곤 했다.

하이디는 어떠했나? 탕자처럼 방탕한 생활 끝에 이웃과 철저히 고립된 할아버지의 마음에서 사랑을 끌어내고 교회에 가자고 조르다가 하이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탕자의 비유를 읽어드림으로 할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여 끝내 할아버지를 하느님께로 이끈다.
'하이디'의 주제가 클라라의 육체적 회복 이전에 할아버지의 회개인지도 모른다.

하이디는, 목동 피터의 눈먼 할머니에게도 늘 성경을 읽어드려서 큰 희망과 기쁨을 선사했고 걸음을 못 걷는 클라라를 알프스로 오게 해 하이디의 할아버지의 노력과 직접 기르는 양의 양젖과 알프스 산의 신선한 공기로 건강해지게 했다. 그래도 감히 걸을 생각은 못하고 있었는데 하이디를 클라라에게 빼앗긴데 대한 질투로 피터가 클라라의 휠체어를 산 밑으로 밀어 떨어뜨린 것이 전화위복이 된다.

클라라는 산 너머의 예쁜 꽃을 보려는 마음이 너무 간절해 부축을 받아서 걷기 시작했다. 나중에 피터의 잘못이 드러났는데도 다그치지 않고 피터를 타이르는 클라라 할머니의 말씀이 인상적이다. 나쁜 생각으로 하느님의 사람을 괴롭히려 해도 하느님은 그 기회를 오히려 더 좋게 쓰셔서 화가 복이 되지만 악을 저지른 사람은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울 수밖에 없으니 결국 본인만 다친다는 이야기를 피터에게 들려주셨다.

하이디의 착한 마음을 통해 클라라 가족은 피터 가족을 돕게 된다. 요새 말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이다.

하이디는 책을 읽은 내 마음과 독자들 마음에 살아 있고 착한 허드슨 선생도 많은 이들의 마음에 살아 있을 것이다. 부디 허드슨 선생과 하이디 같은 이들에게 큰 축복이 있기를!

<정정숙/전직 공립학교 교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