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일본에 나타난 해적선

2018-02-05 (월)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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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통신에 의하면 일본 북해도의 마쓰마에섬에 해적선이 나타나 주인이 부재중인 오막살이에 침입하여 냉장고, TV 등 일화 65만 엔에 상당한 가전제품들을 도둑질하여 도주하였다고 한다. 이 3인조 해적 일당은 얼마 뒤에 체포되었는데 신원을 조사해 보니 북조선 사람들이었고 선장의 이름은 강 명학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공산당 단체인 조총련에서 피해를 변상하겠으니 범인들을 풀어달라고 교섭하였으나 일본 경찰은 단연 거부하였다고 한다. 다른 선박을 습격하거나 해변 마을을 습격하는 도둑떼를 해적이라 부른다면 그들은 분명히 해적이다.

해적의 역사는 아주 오래다. 가장 유명한 해적은 ‘바르바리 해적’이다. 그들은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무려 300년 동안 활약한 최장기 해적의 무리이다.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아 등 전 유럽을 상대로 사람을 잡아다가 인신매매를 한 무슬림 해적단이다.


기독교인까지도 무슬림에 가입하면 바르바리 해적단에 입단시켰다. 1530년부터 1789년까지 150만 명을 납치하여 여러 이슬람 국가에서 노예로 부렸다. 그러나 그들도 당시 유럽 최강국인 영국과 프랑스 선박만은 습격하지 않았다. 바르바리 해적의 가장 큰 피해를 본 나라는 러시아이다.

미국 해군이 트리폴리를 1801년과 1815년에 두 번 공격하여 단장 하리르 앗딘을 죽이고 바르바리 해적단이 비로소 해체되었다. 이 해전이 미국이 해외로 군대를 파견한 최초의 전투였다.

해적을 가장 많이 산출한 나라는 소말리아이다. 소말리아 내전으로 공장 취직이 거의 불가능해지고 어업은 기술이 발달한 나라들에게 밀려 수입이 적어지자 본래 바닷사람들인 그들은 많이 해적으로 변신하였다. 바다에서 타국 선박을 습격하여 인질을 잡으면 그 몸값이 150만 달러에서 300만 달러까지 치솟아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소말리아 근해를 벗어나 인도네시아 바다까지 손을 뻗었으며 규모와 세력이 날로 커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말리아에 쓰나미(해일)가 발생, 배 117척이 파손, 2천여 명이 사망하는 재해를 당하여 먹고 살 길이 막연해지자 많은 어부들이 해적 행위로 손을 돌린 것이다. 그들은 대포 기관총까지 갖고 세력이 대단하였으며 에티오피아 해군이 그들의 본거지를 습격하였다가 오히려 크게 패퇴한 일까지 있었다. 소말리아 정부가 몹시 가난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해적질 한 수입의 일부를 정부에 헌납함으로 국내에서는 애국자로 칭송을 받기도 하였다. 소말리아 해적과 바다에서 교전한 경험을 가진 나라는 그리스 덴마크 사우디아라비아 독일 프랑스 등으로 화려한 국제적인 해전의 기록까지 그들은 가지고 있었다.

해적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도 많다. 대표적인 것은 스티븐슨의 ‘보물섬’, ‘피터팬’ 등이 있다. 피터팬은 희대의 인물 후크 선장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소설에서는 해적을 모험가나 트레저 헌터(보물 찾기)로 그리는 수가 많다. 삽화나 만화에서 해적의 상징은 해골마크이다. 그래서 해적선의 깃발은 해골깃발이다.

소설에 나오는 해적들은 이상하게도 대개 외팔이다. 손에 갈고리를 들고 다리는 목발, 해적들이 어깨에 앵무새를 얹고 다니는 것도 재미있는 표현이다. 해적의 얼굴은 수염이 복술하고 눈은 날카롭지만 순하게 생겼다. 중국에서는 바다가 멀기 때문에 해적보다는 호수와 강에서 활약하는 수적(水賊)이 많이 나온다.

해적 후크 말고도 유명한 해적으로는 알비다, 잭슨펠로우 등이 있다. 일본 사무라이들이 전라도와 경상도 해변 마을들을 치고 노략질 한 쓴 역사를 우리도 가지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조선 정벌이란 그럴듯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으나 역시 해적질임에 틀림이 없었다. 일본은 다른 나라의 침범을 받아보지 않은 나라이다. 그러나 그들은 수 없이 타국을 침략하고 노략질 하였다.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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