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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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삐따의 삶

2018-01-27 (토) 최원국/비영리 기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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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해 가을 자연의 정취를 느끼고 싶어 산책 겸 숲과 잔디가 잘 다듬어져 있는 타운 공원엘 갔다. 좋은 날씨를 만끽하고 싶은지 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산책도 하고 여유롭게 의자에 앉아 담소하고 있는 것이 여유롭게 보였다.

그 중에는 한국 노인들도 많이 보였다. 유유상종이랄까 나는 그들이 있는 의자에 앉아 이런 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했다. 은퇴한 그들과 한참 이야기하면서 느낀 것은 특별하게 하는 일 없이 친구 만나 담소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불만과 과거의 좋은 추억을 서로 이야기하다 보니 같은 시대에 살아온 세대로 공통으로 느끼는 점이 많았고 공감 가는 이야기들 이었다. 그래도 친구와 같이 공원에 나와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같이 걷고 이야기 하는 사람은 시간의 귀중함을 알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하루 종일 집안에 있으면서 신문의 광고 까지 읽고도 시간이 남아 하루가 지루 하다는 것이다. 은퇴한 사람이 집에 혼자 있으면 더 외롭고 온갖 잡념 속에서 생활이 의기소침해지기 쉽다.

가끔 나도 집에 혼자 있는 날은 삶이 무기력하게 느껴지며 이렇게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인가 회의를 느낄 때가 많았다.

나는 어느 날 친구에게 점심이나 하고 싶어 전화를 했다. 이렇게 좋은 날 집에서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집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하는 이야기가 누가 불러 주지도 않고 갈 데가 없으니 집에 있다는 것이다.

젊어서는 누구나 활동적이라 할 일도 많고 친구가 불러주기 전에 먼저 일을 만들어 같이 즐기곤 했다. 나이가 들어서는 더 움직이어야 하는데도 체력이 떨어지고 활동 반경도 좁다 보니 앉아서 생활하는 것이 편해졌고 게을러지고 있다.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도 안 만나니 멀어지고 더 소원해지는 것이다.
친구 사귈 기회도 적어지고 점점 혼자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외부 출입이 없어지고 있다. 나 자신도 옛날과 달라 혼자 활동하면서도 같은 취미가 없는 한 친하게 지냈던 다른 동료를 불러내어 만난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누가 앞에서 이끌어 주고 뒤에서 따라가는 삶은 편했다. 지금 은퇴한 사람들의 삶은 옛날보다 이 삼 십년을 더 살고 있다. 그 많은 시간을 어떻게 알차게 보낼 것인가? 무의미하게 보낼 것인가 깊이 고민 할 때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젊어서는 가정을 이끌고 아이들 교육 등 삶의 제약을 받고 생활하다보니 자기의 재능을 펼치지도, 취미 생활도 못하고 살아 왔다. 은퇴한 우리에게는 지금 남아 있는 것이 시간이고 자기 취미에 맞게 활동 할 수 있는 시간 부자들이다.


미국 속의 한국사회는 양적 질적으로 많이 성장하여 봉사단체와 교회에서 은퇴한 노인들의 윤택한 삶을 위하여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봉사를 하고 있다.

나는 가끔 친구들과 맥주 한 잔씩 하면서 ‘빠삐따’로 건배하면서 우의를 다지고 있다. 누가 불러주기를 바라는 삶보다 친구를 불러주는 주도적인 삶으로 한 번쯤 바꾸면서 마음속으로 ‘빠삐따(빠지지 말고, 삐지지 말고, 따지지 말자)’를 외쳐 본다.

그렇게 살다 보면 황혼에도 즐거운 삶이 되지 않을까? 어느덧 가을 해는 공원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석양과 단풍을 붉게 물들이면서 뉘엿뉘엿 지고 있다.

<최원국/비영리 기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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