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눈 오는 밤

2018-01-26 (금) 최동선/커네티컷 전 한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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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기울던 해가 아직 빈 나무에 걸려 있을 시간 임에도 겨울 초저녁은 일찌감치 어두워졌다. 심상치 않은 기척을 느끼며 커튼을 열어 창 밖을 내다 보고서야 눈이 온다는 일기 예보가 있었음을 기억해 냈다.

언제 그렇게 쌓였는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한 눈 뭉치가 후두둑’ 떨어지고, 나무 뒤에 숨어 있던 사슴이 화들짝 놀라 다른 나무를 찾아 몸을 숨긴다. 멀리서 눈을 이기지 못한 가지의 ‘투욱’ 하고 내지르는 소리가 밤 하늘에 금을 긋는다. 시인 백석 (白石) 이 그토록 가고 싶어했다던 길이 저기 어디 쯤 일 거라는 생각을 하며 오래도록 창가를 떠나지 못하고 서성였다.

기억이라는 것은 케케묵은 낡은 코트 같아서 옷장 한 구석에 아무렇게나 ‘툭' 던져 놓고 거들떠 보지 않으면서도 그 낡은 코트의 어디 쯤엔가 남아 있을 온기 때문에 버리지 못하는 그런 것이었다.


오늘도 오래 전의 그 어느날 처럼 눈이 내리고, 세상의 모든 소리는 그 눈 속에 묻혀 버렸다. 흑백 사진에 갇힌 풍경처럼 퇴색해 버린 희미한 기억속 풍경에도 소리없이 눈이 쌓인다.

돌이켜 보면 치졸했으나 어느새 그리움이 되어버린 이름들, 그들과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싶었으나 그 방법을 몰라 허둥대던 시간들이 ‘쩍’ 소리를 내며 얼어붙은 마음에 금을 긋는다. 하루키의 표현 대로 ‘산이 무너져 깊은 바다가 메어질 만큼’ 누군가가 그리워 지는 밤이다.

눈속에 발이 푹푹 빠져가면서도 어머니를 따라 외갓집에 가던 작은 소년이 있었다. 매서운 칼바람은 소년의 허술한 옷깃을 사정없이 헤집고 들어와 작은 몸을 더 웅크리게 만들었었다.

바람 결에 들리는 ‘추우니?’ 라는 어머니의 물음에 꽁꽁 언 입으로 ‘아니’ 라고 짧게 대답했지만 어린 소년이 견디기에는 참기 힘든 추위였었다. 어머니가 찍어 놓은 발자국을 따라 걸어가다 뒤를 돌아 보면 한 줄로 난 발자국이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눈이 내리는 밤이면 ‘춥니?’ 라고 묻는 목소리에‘ 아니’ 라는 메아리로 대답하며 오늘도 그 소년은 마음안에 깊게 패인 눈 길을 서성인다. 그 길에는 늘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는 앞서 오는 추위와 바람을 온 몸으로 막아내며 눈길을 열었었다.

어머니의 나이를 훌쩍 넘긴 그때의 어린 소년은 이제 먼 길을 걸어가도 닿을 곳이 없다는 서글픔으로 세상에서 가장 든든하고 따뜻했던 어머니의 등을 추억한다. 창문을 흔들며 지나가던 바람이 잦아들고 한없이 낮아 지는 밤은 깊어간다. 다가오는 세월은 늘 지나간 시간이었다.

벗어나야 보이는 것이 있고, 사라진 후에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진리를 깨닫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끝없이 반복될 것 같은 매일이, 그럭저럭 비슷한 하루가, 어제까지 내게도 해당되었던 일상이, 갑자기 사라지고 나면 그때서야 평범해서 특별한 하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바람에 떠 밀려 올라가던 언덕에서 누군가 쌓아 둔 작은 돌탑을 만나 위안을 얻던 하루도, 뭉개진 마음을 애써 모른 척 외면하고 걸으며 거칠게 새겨 둔 시간도, 기억속에 차곡차곡 모아 두어야 겠다.

동토(凍土)에 쌓인 눈도 녹는 시간이 필요하듯 언젠가 지나가고 말 계절에 의연해지기로 한다. 아직은 위풍 당당한 겨울이다.

<최동선/커네티컷 전 한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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