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톰 아저씨와 눈

2018-01-20 (토) 소예리/교무.리치필드 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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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저지 자문위원 글마당

우리 교당 건너편 코너 집에는 톰 아저씨가 부인과 건장한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 가족들은 모두 체격이 우람하다. 겨울을 빼고는 그들은 가끔씩 뒤뜰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동네에 바베큐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바람에 실려 고기 냄새가 우리 집 창을 넘어오면 “아 저 집 또 고기 먹는구나.” 그러곤 한다.

지난 1월4일, 세찬 바람과 함께 눈 폭풍이 내린 날이었다. 나는 한 겨울이 되면 춥기도 하고 눈도 좀 오고 그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긴 한다. 그런데 코너에 교당 건물이 있는지라 사이 드 웍과 넓은 주차장에 쌓인 눈을 스스로 치우기에 그 도를 넘을라치면 사실이지 눈 오는 것이 걱정이 된다.

그날도 나는 눈이 오는데도 행인들을 위해 더 많이 쌓이기 전에 한 번씩 치워야겠다고 생각은 했다. 그러나 워낙 눈보라가 심해 춥기도 하고 내 몸이 날아갈 것 같은 불안감에 눈이 좀 그치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오후 들어서 눈이 좀 잦아들기에 삽을 들고 나가 길을 뚫기 시작했다. 눈이 많이 온 날은 정말 한 사람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겨우 삽의 넓이만큼만 뚫을 수밖에 없다.


쌓인 눈은 무거웠고 바람까지 세차게 불었다. 다음 날 기온이 더 떨어진다 하니 아침이 오면 언 눈을 깨서 치워야 할 상황일 수도 있겠다 싶어 열심히 치웠다. 그후엔 차량 9대를 댈 수 있는 주차장의 눈이 문제였다. 우리 차는 안쪽에 자리 잡고 있어 움직일 생각은 미리 포기했다. 우선 방문차량 2대 정도의 주차 공간만이라도 확보하자 싶어 속도를 내었다. 운동 삼아 한다고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일심으로 해도 시간이 길어지니 땀이 흥건해지고 몸이 지치기 시작하였다. 오늘은 2대 분량 여기까지만 하자고 마음을 먹고 안으로 들어와 다른 일을 보았다. 그러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 방에 들어왔는데 밖에서 기계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지?” 창문을 열어보니 이웃집 톰 아저씨가 눈 기계를 돌리고 있고 그의 아들은 눈삽으로 아버지와 함께 우리 주차장의 눈을 치우고 있었다. 좀 전 내가 주차장 눈의 일부를 치우고 있을 때 그들도 나와서 자기 집 주변의 눈을 치우고 있기에 멀리서 손을 흔들어 인사를 나누긴 했었다. 내가 들어온 이후에 그들이 보았을 때 저 안쪽에 갇혀있는 우리 차를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나보다.

“에구머니나.” 사실 나는 몸이 힘들어 마음으로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이웃이 와서 우리 눈을 치우는데 도저히 안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복장을 챙기고 나가 함께 눈을 치웠다. 덕분에 강제 소환되어 주차장의 눈을 3분의 1정도만 남기고 치우게 된 것이다.

고마운 마음에 말린 과일과 배를 들고 아저씨네 집으로 갔다. 톰 아저씨는 안해도 된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나는 약소하지만 받아주시라 하고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왔다.
사실 톰 아저씨가 우리 눈을 치워준 것은 우리가 여기에 이사 와서 7년 사는 동안 4번째 입은 은혜였다. 매번 눈이 많이 오는 날이었고 늘 찻길을 내주고 가셨다.

톰 아저씨는 자기 집도 코너라 치울 눈이 많음에도 남의 마당 눈까지 치워주려는 그 마음이 어찌 났을까? 매번 삽으로 여자 둘이 눈을 치우는 모습이 안쓰러워서였을까? 지난해부터는 눈 내리고 하루 지나면 교도님께서 차를 갖고 오시어 금방 치워주고 가시는지라 한결 수월해졌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이웃집 탐 아저씨가 가끔 우리 눈을 치워준다는 것은 팩트다.

남에게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안다. 우리 또 다른 옆집에는 노부부가 사시는데 근처에 사는 아들이 와서 길을 치우기 전에는 항상 눈이 쌓여 있는 편이다. 우리 쪽 치우는 김에 그 집 사이드 웍도 삽으로 길게 한 번씩 밀어드리곤 했다. 그런데 요사인 내 몸이 힘이 드니 그런 마음이 선뜻 나지 않고 몸을 사리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그러니 마음으로 아무런 바람 없이 남을 돕는다는 것이 정말 쉬운 일은 아님이 확실하다. 그래서 무념보시, 무상보시가 귀하다고 하는 것이지.

나는 2018년 연초에 이웃으로부터 조건 없는 따뜻한 정을 선물로 받으며 다시금 보은하며 살 것을 다짐한다. “톰 아저씨! 고맙습니다. 우리 계속 좋은 이웃으로 잘 지내요.”

<소예리/교무.리치필드 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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