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를 보겠다는 생각으로 새해 첫 주에 아이슬랜드에 갔다. 눈 덮인 어두운 풍경은 하루 종일 해가 떠 있던 여름 풍경과는 완연하게 달랐다. 우리를 안내하던 키 큰 여인은 바이킹의 후손 일 것이다. 그는 아이슬랜드의 특징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바람, 지진, 아이슬랜드 조랑말이라 했다. 삼다도인 셈이다.
바이킹들의 말이 몽고 조랑말의 혈통을 이었다고 했다. 인구 34만명에 말이 8만 마리나 된다니 사람 네 명에 거의 말이 한 마리인 셈이다. 삼다도 하면 우리는 제주도를 떠올리게 된다. 바람 많고 한 많은 여자 많고 돌 많은 화산섬의 특징 때문일 것 이다. 또 몽고 침략의 흔적으로 남아있는 조랑말을 잊을 수 없다. 몽고 사람들이 이 조랑말을 타고 한반도에서 부터 중국과 중앙 아시아를 거쳐 흑해 연안과 러시아까지 정복한 것을 보면, 이 말이 보기보다는 지구력이 대단한 것 같다. 아이슬랜드와 제주도라는 두 삼다도를 생각하면서 비교 상상하는 것이 재미가 있었다.
돌이 많은 것이야 화산섬이니 당연한 것 이고, 바람 많은 것도 섬들의 특징이기는 하지만 제주도의 바람과 아이슬랜드의 바람은 비교하기가 좀 어려운 것 같았다. 하루에도 한 두 번 강풍으로 버스 운행이 중지되는 아이슬랜드의 추운 겨울 바람속에서 남쪽 제주도의 훈풍이 가져다주는 너그러움은 찾을 수 없었다.
제주도에는여인들이 많다고 한다. 한 많은 여인들… 고기 잡으려 거친 바다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들이 많아질수록 이런 여인들이 많아지는 것이 옛 제주도 였던 것이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이 간 곳이 어디일까? 갔다고 믿고 싶은 곳은 어디였을까?
이청준의 단편 소설 ‘이어도’는 고은의 시 “이어도”와 함께 이런 여인들의 쌓인 한이 어디에 닿아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감동적인 작품으로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아이슬랜드 에도 이런 여인들이 많았을까? 그랬을 것이라는 것이 별 근거없는 나의 짐작이다. 아이슬랜드인의 DNA를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40% 정도의 인구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Ireland) 계통의 혈통을 받았다고 한다.
바이킹들이 전 유럽과 지중해를 침략하고 약탈했던 때가 있었다. 이들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를 침공해서 많은 여인들을 납치했다. 추운 아이슬랜드에 잡혀온 이 여인들이 노예생활을 하면서 그리워 했을 먼 고국의 거리만큼이나 그들의 가슴에 쌓인 한도 깊었을 것 이다.
가이드 하는 여인이 몽고말과 아이슬랜드말의 혈통을 말할 때 나는 혹시 훈족 아틸라가 유럽을 침공했을 때 타고온 몽고말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덴마크와 노르웨이에 흘러들었고 9세기경에 아이슬랜드에 정착한 바이킹들이 이 곳에 가져온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몽고말과는 실제로는 상관이 없고, 옛날 북유럽에 살았던 지금은 멸종한 말의 후예라 한다.
보러갔던 오로라는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구경도 못하고 추위와 바람과 얼어버린 강과 폭포와 무수한 온천과 뿜어오르는 간헐천(Gyser)들을 돌아보면서, 어허, 이것을 보는 것도 큰 복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Carpe Diem이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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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헌 /맨체스터 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