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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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뉴톤 존 공연을 보고

2018-01-13 (토) 한범성/사업가· 팰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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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저지 자문위원 글마당

올리비아 뉴톤 존(Olivia Newton John) 공연을 보고 왔다. 겨울이 막 바람사이를 비집고 갓 찾아 온 어느 11월 늦은 저녁에...

이제 69세가 되었다는 한 물간 가수를 누가 보러 올까 하는 궁금함과, 자리가 차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염려까지 하게 된 건 나만의 몫이었을까 하며... 하지만 Live Concert를 간다는 설레는 기대가 스카프를 두른 목처럼 포근했다.

학생 시절 영어 가사를 다 이해도 못하면서 흥얼거리던 귀에 익은 히트곡들. 영화 Greece의 여주인공. 당대의 대 스타를 Live로 눈앞에 맞으며, 입으로 곡을 따라 부르고, 가끔은 Humming을 하기도 하며, 한 곡 한 곡 박수를 치며, 머릿속은 젊은 날의 추억으로, 마음속은 푸릇푸릇한 그 시절의 나와 똑 같이 채워져 갔다.


간간이 섞인 젊은이들도 있지만 웬만큼은 나이가 지긋한 청중들. 누가 뭐래도 너나 할 것 없이 40년전과 꼭 같이 들뜨게 된 건 늘 지난 시간을 잊게 해주는 망각의 신비한 힘이다.

영화 Greece가 40주년이 되었다는 말에 그럼 내 나이는 몇이지 하며 입가에 잔웃음이 번졌다. 암과 투병한 일과 사랑하는 동생을 잃었던 일, 정상의 자리에서 잊혀져 가는 아쉬움. 인생의 소품같은 소회를 들려주며 웃음을 주기도 하고 최근엔 자연 보호를 주제로 새로운 곡을 만들고 부르며 웃음을 잃지 않고 긍정의 삶을 이뤄가는 모습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 왔다. 그래서 그녀는 한물간 스타가 아니라 아직도 스타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나이테처럼 쌓여져 가는 인생의 연륜이요 가슴 여미는 회고록이다. 흰머리가 나고 등은 구부정해 가고 잘 맞던 재킷의 소매는 길어져 간다. 아무리 다듬어도 잔주름은 더 깊이 패여 갈 뿐이다. 번듯이 만들어진 흙무덤은 어느 날 낮아지고 낮아져 모두가 밟고 다니는 길이 되는 것이다. 커다랗고 험상궂은 바위가 낮은 산등성이가 되고, 계곡의 날 선 자갈들이 모래가 되고 흙이 되어 스러져가는 듯 하지만 그 흙에서 다시 생명이 움튼다. 새로운것, 새로운 생명을 위한 밑거름인 것이다.

지난 시절은 돌아가고 싶고 아름답지만 기억에 머물 뿐이고, 앞으로 오는 시간은 두렵기보다 묘하게 기다려지는 새로운 무대인 것이다. 세례요한은 말했다. 나는 쇠하고 오시는 이는 흥하리라. 참 리더 모세는 쇠하고 다음 리더 여호수아는 흥하리라. 내 자리가 비어야 누군가 앉을 빈자리가 생긴다. 비워 준다는 것, 물러선다는 것, 깨달아질 때 그때야 비로소 한물간 스타가 아니라 빛나는 스타가 되는 것이다.

젊은 시절의 상큼하고 아름다운 가수에서 이제는 세월을 잘 다듬어 자연과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품격 있는 가수로 스스로를 빚어 가고 있는 올리비아. 69세의 가수는 관객 모두를 40년전의 소중한 추억의 시간에 가두어 노래만 듣는 게 아니라 그 시절을 꿈같은 회상의 세계로 꺼내어 준 푸근한 공연이었다.

“Maybe I hang around here, A little more than I should, We both know I got somewhere else to go.” 어쩌면 여기에 좀 더 머물 수 있어요,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조금 더,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어요, 우리가 언젠가 가야 할 곳이 있다는 걸. 올리비아의 힛트곡중 “I honestly love you”의 첫 가사이다.

벌써 또 한해가 갔다. 이제 오시는 예수님은 흥하리라 한 세례요한의 선포처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우리의 모든 것은 하루하루 옛것이 된다. 하지만 펼쳐질 새롭고 화려한 무대가 기다려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난 한해말 많은 사람을 품고 새해를 맞았다. 좋던 나쁘던, 이롭던 해롭던, 용서와 포용,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뒤 돌아 보았다.

한해동안 보듬고 도와주시고 미소와 웃음과 때론 눈물로 나눈 모든 분들과의 기억들을 가슴에 품었다. 참 감사했다. 사랑해 주시고 아껴 주셔서. 새해에는 하나하나 잊지 않고 가슴에 담아 정성껏 기도로 갚아 나가겠습니다.

<한범성/사업가· 팰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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