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태양의 축복

2018-01-13 (토) 한영국/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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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력은 없지만 보는 것은 좋아해서 이따금 갤러리에 들린다. 리버사이드 갤러리에 들렸다가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새해 새 결심도 없이 어영부영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 작가와 얘기를 나누다 깜짝 놀랐다. 그 삶의 치열함이라니! 지금도 하루 10시간 작업을 한단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하루에 글 한 줄 안 쓰고 지나가는 날이 많은 내게는 참으로 놀라운 충격이었다.

이 작가의 그림에는 해가 뜨고, 나무들이 자라고, 강물이 춤을 추고, 세상이 약동한다. 그 모든 생의 군무는 태양의 빛살 속에서 이루어진다. 태양은 억억창생 하나하나에게 황금의 빛 조각들을 나누어 주고 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항하사만큼의 붓질이 들어간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빛의 편린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목숨들에게 태양의 축복을 전하고 있다.

그의 작품을 보면 화가 자신의 생이 궁금해진다. 어떻게 살아 왔을까? 그는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해 초기 그림에는 화선지에 먹으로 그린 단색 풍경화가 많다. 하지만 1975년 필라델피아 아트 인스티튜트로 유학 오면서 먹으로 그린 그림을 캔버스에 배접했고, 1983년부터는 배접 후에 아크릴 컬러를 입혔다.


아들을 임신했을 때는 그 생명이 경이로워 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단다. 이는 여류 화가의 특권이자 행복이었다. 그래서 그린 그림이 ‘태동(Birth Movement)’. 아이 뒷바라지를 하면서는 항상 주머니에 붓을 넣고 다녔다. 조각난 시간밖에 쓸 수 없었으므로 20분만 빈다 싶으면 붓질을 했다.

1992년 몬탁에서 해돋이를 본 것은 은총이었다. 그 후 6개월 동안 새벽마다 허드슨 강가에 가서 일출을 목격하고는 작업을 했다. 해는 그에게 소망을 의미했다.(그만큼 힘든 시간이었을까? 그의 개인적 소망은 차마 묻지 못했다. 하지만 그 소망의 내용을 모른들 대수랴. 소망이 없는 자는 없고, 그의 그림에는 개인적 소망을 넘어선 우리 모두의 소망이 담겨져 있으니…)

예술비평가인 Eleanor Heartney가 이 작가의 그림을 보고 쓴 글이 있다. 그의 그림은 ‘다양성에서 자라난 하모니여서, 이 분열되고 분절된 세상에서도 아직은 예술이 우리 모두를 하나 되게 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21세기에 귀 기울여 들을 지적이다.
억억창생을 어루만지는 태양의 축복, 그것을 우리에게 전해주기 위해 하루 10시간, 주 7일 붓을 들고 서 있는 작가에게 경의를 보낸다.

<한영국/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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