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밀당의 고수

2018-01-12 (금) 김소영 사회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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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의 눈

자신의 의도대로 연애를 잘 끌고 가는 사람을 요즘 말로 ‘밀당의 고수’라고 부른다.

밀당이란 ‘밀고 당기기’의 줄임말로 남녀 연인간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심리 싸움을 일컫는 신조어이다. 한없이 좋아하는 것처럼 행동하다가도 어느 순간 적당한 긴장감과 함께 무심한 듯한 행동으로 애를 태우다 결국 상대방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고도의 기술.
그렇다면 세계 외교가에서 밀당의 고수로 꼽히는 어떤 인물이 있을까. 아마도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그 중 한명일 것이다.

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 올림픽 참가 의사를 내비쳐 전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더니 지난 9일 2년 만에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을 통해 평창 올림픽에 대규모 참가단을 파견하겠다고 못을 박았다.


이 같은 김 위원장의 전향적인 자세에 미국은 물론 전세계 국가들은 그동안 북핵 이슈로 전쟁 위기로 꽁꽁 얼어붙었던 한반도에 오랜 만에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며 반색하고 있다.

북한이 자진해서 올림픽에 참석하겠다고 문을 두드린 만큼 이를 계기로 한반도 긴장 완화와 더 나아가 한반도 비핵화까지 이어지지 않겠냐는 장밋빛 추측들도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다.

물론 북한 정권 자체가 워낙 앞뒤를 예측하기 쉽지 않다보니 남북 고위급 회담 개최와 올림픽 동참 발표에도 불구하고 ‘숨겨진 다른 의도가 있지 않냐’는 의혹의 눈초리가 상당한 점도 사실이다.

그동안 이어져온 미국과 중국은 물론 유엔의 경고와 제재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핵실험과 장기 탄도미사일 개발을 강화해온 북한이 갑작스럽게 협조적 자세를 취할 리 없다는 얘기다.

적당히 상대가 원하는 것을 맛보기로 보여주면서 당겼다가, 어느 시기가 되면 또 다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제시하며 밀쳐내는 ‘밀당의 기술’을 재연해 보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북한의 남북 고위급회담 수용과 평창 동계올림픽 참여는 분명 환영할 만하고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같은 북한의 모습을 마치 헤어진 여자 친구가 마음을 바꾸고 돌아온 것처럼 무조건 다 받아주고 감격해 하지는 말자. 김정은 위원장의 밀당 기술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김소영 사회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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