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를 건너가는 한 여자를 보고 한 학생이 “야, 저기 참 멋쟁이 여자가 지나간다”고 말한다. 그 여자가 누군지 모르지만 루비통 가방에 바바리코트를 걸친 그 옷차림과 몸가짐이 역시 세련된 멋쟁이었다. 이름난 상표의 가방과 코트를 걸쳤으니 손목에 찬 시계도 고급일 것이고 구두나 내장품(內裝品)들도 이름난 메이커의 제품들일 것이다. 속내는 모르지만 겉으로 나타난 모습은 참 멋이 있었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될 수 있는 멋쟁이다.
이러한 멋을 영어로는 Dandyism, 또는 foppery, chic, stylishness 라는 단어로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속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겉을 치장해서 만들어지는 멋이다. 그런데 오후에 소포를 부치기 위해서 우체국에 가서 줄을 서고 있는데 어쩌면 공교롭게도 아침에 본 그 멋쟁이 여자가 그 우체국에 나타난 것이다.
우체국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허름한 차림의 꾸부정하게 허리를 굽힌 나이든 한국인 할머니가 손에 봉투를 쥐고 피곤한 듯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멋쟁이 한인 여성이 그 할머니 곁으로 살그머니 오더니 “할머니, 미안하지만 나 여기 좀 끼어 섭시다”하고 양해도 없이 마구 줄에 끼어드는 것이었다.
겉은 멋 쟁이었는데 속은 얌체였다. 자기의 겉으로 나타난 멋으로 그 얌체의 속성이 남에게 수용될 줄 아는 모양이었다. 뒤에 섰던 허름한 히스패닉 노동꾼 한 사람이 “젊은 멋쟁이 아주머니, 줄을 제대로 서시지요.”하는 것이었다. 물론 영어로 말한 것이다. 그 젊은 여자가 그 히스패닉 노동꾼을 멸시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이었으나 그녀로부터 멋은 사라지고 무례와 얌체스러운 천태(賤態)만 불거져 나왔다. 오히려 ‘멋’은 허름한 노동꾼에게 있었다. 그는 비록 거리의 일당(日當) 노동꾼이었으나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지, 못하는지 모르는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잠 25:11)
그 노동자가 용무를 마치고 우체국에서 나와서 네거리 모퉁이 전봇대 밑에서, 하루 일을 얻기 위해서 자기를 불러줄 사람을 기다리고 서 있는데 시내 버스에서 한 노인이 내렸다. 버스에서 내린 노인은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몇 발자국 걷다가 신호등이 바뀌려는 것을 보고 허둥지둥 서둘러 길을 거느려다가 보따리를 든 채 길바닥에 쓰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 우체국에서 있었던 히스패닉 노동꾼이 재빨리 달려가서 그 노인의 짐을 들고 노인을 부추겨서 길을 건네주고 오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 한 차(車)가 그 히스패닉이 기다리고 서 있던 자리에 와서 거기서 기다리고 있던 다른 두 사람을 데리고 갔다. 하루 일당의 기회를 놓진 그 히스패닉 노동자는 다시 그 길모퉁이의 전봇대에 기대어 무표정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서있었다. 그 겉모습은 그 멋쟁이 여자와 대조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고 천덕스럽기까지 하였다.
겉으로 보이는 멋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초라한 모습이었으나 그의 선한 행동은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온 참 멋이 있었다. 그는 우체국에서와 같이 남들이 못하는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는 사람일뿐 아니라 자기의 유익을 버리고 이웃을 위하여 희생 할 수 있는 멋이 있는 사람이었다.
‘멋’은 같은 말인데 왜 그렇게 의미가 다르게 들리는 것일까? ‘당신은 참 멋쟁이다’ 하는 말과 ‘당신은 참 멋이 있습니다’ 라고 하는 말이 좀 달리 느껴지기도 한다. ‘멋쟁이다’ 하면 바리새인이다, 라고 하는 것 같고, ‘멋이 있다’ 하면 신실하고 진지하게 행한다 라고 들리는 느낌을 갖게 된다.
우리는 겉으로 꾸미는 멋보다 내면에서 우러나는 멋의 조성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겉모습은 초라하고 천할 수도 있으나, 내면으로부터 우러나는 멋으로 그 초라하고 천한 모습이 미(美)로 나타날 수 있지만, 겉에서 꾸며진 멋은 아무리 그럴듯하여도 내면으로부터 표출되는 천취(賤臭)로 인하여 먹칠되고 만다. 내면의 인격여하에 따라서 화려한 겉모습이 먹칠될 수도 있고, 또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겉모습이 아름답게 승화될 수도 있다. 내면의 인격 형성이 중요한 것이다. 내면 인격형성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 사무엘선지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의 초대 왕을 뽑을 때 외모를 보지 말고 중심을 보라고 했다. 중심을 보시며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멋지게 사는 지식과 지혜를 얻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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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경/은목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