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팽주

2018-01-05 (금) 고명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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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선비문화로 전통 차 문화가 있다. 차에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은 것을 정통으로 여겼다.

행다법에 따라 찻물을 끓이고 완성된 차를 따라서 나눠주는 이, 즉, 차를 다려내는 사람을 팽주라고 부른다. 요즘의 커피를 내려주는 바리스타나 바텐더의 역할과는 사뭇 다르다. 팽주는 차의 품질과 우려내는 물의 성질, 차를 마시는 자리의 분위기까지 살펴서 최대한 향기롭고 맛있는 차를 우려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띤 사람이다.

팽주의 마음 상태, 표정, 자세와 언어, 차림새 등 그 순간에 풍기는 모든 것이 차의 맛과 연결되어 있다고 하니 차 마시는 분위기까지 화기애애하게 끌어내야 하는 팽주의 역할은 크다고 하겠다. 팽주가 정성스럽게 따라 주는 차의 향기를 음미하며 비워지는 다관에는 불순물 없는 마음이 가득 채워지게 마련이다.


지난 한국방문 때 지인이 선물로 안겨준 ‘발효 흑차’를 내리며 한 해의 첫날밤을 묵상한다. 지인의 몇 분 친우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손안에 꼭 들어오는 찻잔을 보듬고 귀 기울였던 대화 내용 중에는 나이 들어보니 훈장 다 떼고 서로 어우러져 둥글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삶이라는 대목이 있었다.

웃으면서 힘주어 말했던 지인의 한 마디가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조금 더 가진 자가 베풀면 되고 부족하다고 뒤로 빠지는 일도 없어야 한다며 끈끈한 동료애를 강조하였다.

팽주를 자청한 지인은 찻물을 확인하며 쉴 틈 없는 손놀림으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차를 우려낼수록 깊은 맛이 더해지듯이 허물없는 대화의 보따리는 점점 따뜻해지기만 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후한 인심은 하늘에 걸린 구름도 창가에 머물다 가게 했다.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느낌과 기억을 남겨둔 채 시간의 흐름은 걷잡을 수 없이 내달려 새로운 한 해의 길로 접어든다. 순수의 잔디에 여린 풀잎으로 돌아가 이슬을 마신다. 뛰어가던 길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내 안의 소리를 듣는다.

오솔길, 굽이진 길, 가파른 언덕길에 발자국은 보이지 않아도 한순간이라도 함께했던 그분들의 모습과 표정은 여전히 기억되고 한 조각 마음마저 지워지지 않는다. 귀한 만남은 시간 속에 묻히기보다는 가끔 확인하고 싶은 부치지 않은 편지인지도 모른다. 무심코 부르던 노래 마디마디에 의미를 확인하고 기억의 되새김으로 내일을 쓴다.

쏟아지는 잠을 미룬 이슥한 밤에 사념의 문을 닫고 성에 낀 창문을 닦는다. 시린 손을 정갈한 햇볕에 말리는 심정으로 한 발짝 낯선 걸음을 나선다.

새로 열리는 시간이 과거의 꼬리표를 떼고 옆에 와 있다. 전통 차에 대해 아는 게 없었던 나는 팽주를 자청한 지인의 모습과 마음가짐을 지켜보며 전통 차를 가까이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새해에는 모든 대화가 덕담이 되고 만남은 좋은 인연으로 이어져 지워지지 않는 의미로 남아 내 안의 향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순수하게 우려낸 은은한 향기로 남아 높고 낮음 없이 상대방을 섬기고 때로는 따뜻한 귀가 되어 베풀어 가는 진정한 팽주의 모습을 꿈꾸어 본다.

<고명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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