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도토리묵 여사

2017-12-30 (토) 강미라/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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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새로 이사 온 집의 뒷마당에는 높다란 상수리나무 세 그루가 심겨져 있다. 때문에 나무에서 떨어지는 도토리를 모으느라 분주한 다람쥐들이 집 주인보다 더 즐거이 마당을 누비고 다닌다. 그 놈들의 도토리 사랑을 보 고 있자니 해마다 이맘때 쯤 냉장
고에 켜켜로 쟁여 놓은 도토리묵을 조금씩 꺼내어 먹곤 하던 것이 생각난다.

매해 우리 식구가 가을, 겨우내 꺼내 먹던 묵은 오래 전부터 인연을 맺어 오던 분이 직접 도토리를 주워다가 쑤워 주시던 것이다. 그분은 도토리 철이 돌아오면 정말이지 많은 양의 도토리를 주워 묵을 쑤어서 여러 주변 분들에게 나누어 주곤 하셨다. 눈이라도 쏟아붓는 날이라면 그 뜨끈한 묵밥 생각이 더 간절하다.

조리 과정이 길다 하시기에 어떻게 만드는지 여쭤 보았다. 일단 성한 놈과 상한 놈, 벌레 먹은 놈들을 구분하여 잘 씻어서 말린다. 딱딱한 껍질을 반으로 가른 후 속을 파낸다. 손을 써서 악기를 다루는 나의 입장에서는 이 과정에서 이미 두손 들어 항복을 하였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한 일. 파낸 속살을 물에 며칠간 담가 두었다가 믹서기에 갈아낸다. 그것을 면 보에 넣어 걸러내고 앙금만을 모아 다시 하루정도 물에 담근다. 그리고
그 물은 버리고 나머지를 불에올려 저어 끓여야 한다. 그냥 끓이기만 할 게 아니라 불앞에 서서 내내 많이 저어 주어야 쫄깃해 진다.


그리곤 뜸을 잘 들인 후 용기에부어서 굳히는 것이다. 대체 도토리의 단단한 껍질안
의 속살을 파내어 그것으로 젤라틴을 만들 생각을 애초에 누가 하였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이는 만드는 이의 고단함과 정성이 없이는 도저히 나올 수가 없는 음식이다. 이렇게 긴 과정을 거치는 이 음식을, 인스턴트와 햄버거의 나라에서 해마다 만드시는 이분께 나는 항변하듯 여러 번 여쭈었다. 시판 묵가루도 있고 또 너무 힘드는 일이니 이제 그만 만드시라고. 연세가 칠십이 넘으셨는데 허리 구부려 도토리를 줍는 일만도 얼마
나 고된가.

하지만 언젠가 한번 스치듯 하신 말씀은 나의 종용의 사기를 꺾는다. 길가다가 도토리를 보면 그냥 보고 지나칠 수가 없노라고. 길가에 구르는 도토리는 마치 자기와 같다고. 사람 발에 밟히고 채이고 때론 자동차에 갈리기도 하는, 그렇다 해도 그 누구도 괘념치 않는 흔하고 하찮아 보이는 도토리,그러나 거둔 이의 손에 의해 맛있고 영양이 풍부한 훌륭한 식재료로 재탄생되는 그것은 그 분 자신의 모습이다.

그는 도토리묵을 쑬 때마다 자신을 본다. 일본 강점기에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민족 전쟁을 겪고 하나뿐인 자식을 잃고 이 미국 타향까지 흘러오신 그분의 척박했던 인생, 그러나 신앙을 갖게 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하나님을 만나 그분의 손에 의해 다시 쓸모있는 사람으로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생각한다.

나의 도토리 여사는 칠순이 훌쩍 넘은 연세지만 아직도 주변에 아픈 이들을 챙기고
쉴 틈 없이 뜨개질을 한다. 작년겨울에는 50개의 모자를 떠서 기부하였다. 아직도 운전을 못하는 노인들을 위해 운전대를 잡고 여전히 대접할 음식을 만든다. 이젠 그만 만드시라 해마다 아멘 소리를 해대는 나의 잔소리 때문인지 아님, 지난해 다친 손으로는 더 이상 그 딱딱한 도토리를 까기가 어려워서인지 아무튼 이젠 그분의 도토리묵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섭섭함과 동시에 나는 사실 안도한다. 그분이 조금 일을 덜하시는 것에 대한 안도인지, 아님 나 역시 도토리에 불과함을 잊고있을 때마다 냉장고에서 장군처럼 위용을 자랑하며 내 정신을 두드리는 그 놈을 보지 않게 되어서인지 잘 모르겠다. 그 놈은 말한다.

키 재기를 당장 멈추고, 너 자신을 알라고.나의 도토리묵 여사님, 오래 오래 건강히 사세요.

<강미라/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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