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한 해를 마무리하며

2017-12-30 (토)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크게 작게
한 해가 저물어간다. 오늘 밤, 내일 밤만 자고나면 새해가 된다. 역사에만 남을 2017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윤동주 시인이다. 시인은 1917년 12월30일, 중국 용정에서 태어났다. 오늘이 꼭 100주년이 되는 그의 생일이다. 중국, 명동학교, 조선, 숭실중학교를 거쳐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연희전문학교 시절, 그의 나이 22세. <소년>지에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정식으로 등단했다. 이후 일본 유학 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돼 형무소에 수감됐다. 25세 때다. 해방이 되기 2년 전인 1943년 2월16일. 그는 감옥에서 27세의 나이로 100여 편의 시만 남긴 채 요절하고 만다. 혹독한 고문 때문이었으리라.

그의 사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이 시집의 서시(序詩)를 한 번 보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왜, 윤동주와 윤동주의 서시가 생각났을까. 금년 한 해도 욕심으로만 살아온 한 해가 되어서일까. 하늘을 우러러 보니 모든 것이 부끄러운 한 해 여서일까. 별을 노래하는 마음이 아닌, 물질만 추구하는 마음으로 살아와서일까. 사랑이 아닌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오만으로 가득 찬 한 해 여서일까.

또 한 사람이 생각난다. 이해인 수녀다. 1945년, 해방둥이로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난 이해인수녀. 그도 시인이다. 중학교 시절 언니가 수녀원에 들어갔다. 이 일이 계기가 돼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19세 나이에 수녀가 되기 위해 성 베네딕토 수녀원에 입회했다. 본명은 이명숙. 세례명은 클라우디아. 필명은 이해인으로 바뀐다.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이해인 수녀. 그런데 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 그녀가 생각나는 걸까. 한결 같은 그녀의 생애 때문이 아닐까. 19세부터 금년 72세까지의 그녀의 일생. 2008년 직장암 선고를 받고 2009년부터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도 항상 웃는 모습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그녀의 순수한 미소 때문일까.

그녀가 지은 시 ‘12월의 노래’다. “함께 있을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우리들의 시간/ 땅 속에 묻힌 김장독처럼/ 자신을 통째로 묻고 서서/ 하늘을 보아야 해요/ 얼마쯤의 고독한 거리는/ 항상 지켜야 해요.” 그래, 우리 모두는 함께 있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자신을 통째로 땅 속에 묻고 하늘, 즉 영원을 사모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또 한 사람이 생각난다. 법정 스님이다. 법정스님과는 일면식이 있다. 기자로 취재 다닐 때였다. 지금도 그가 강연하던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다. 스님은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났다. 대학 3년 때 출가를 결심한다. 이유는 6.25전쟁을 겪으면서 가졌던 인간존재에 대한 의문 때문. 결국 22살에 출가, 27살에 비구계를 받았다.

법정스님 하면 떠오르는 세 마디. “무소유(無所有)”다. 스님은 소유하지 않는 삶의 즐거움, 즉 무소유의 철학을 평생 전하다 79세로 떠났다. 단순하고 복잡하지 않게, 그리고 향기롭고 맑게 살아가기를 바랐던 스님. 그는 <무소유> <홀로 사는 즐거움>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버리고 떠나기>등 수십권의 수상집을 집필했다.

스님의 유언.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나라 같은 곳이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나를 부를지라도 ‘네’하고 선뜻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서 왜, 법정스님이 생각났을까. 지난 1년 동안 무소유의 철학으로 생을 살지 못해 그가 생각 난걸까.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한 윤동주시인. 자신을 통째로 묻고 하늘을 보아야 한다는 이해인수녀. 어린왕자가 사는 별나라 같은 곳에 훨훨 날아가고 싶다던 법정스님. 세 사람 다 향기롭고 맑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땅 보다는 하늘과 별나라에 소망을 둔 사람들이다. 2017년이여 잘 가세요!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