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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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는기쁨

2017-12-19 (화) 나 리/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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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체스터 칼럼

미국에 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12월은 봉급을 더 받는 휴일이 있어 좋았고, 연말과 휴일에 사람들이 덜 아픈 경향이 있어 병동이 한가해져서 신이 났다. 병원에는 성탄절과 새해 둘 중에 한 번은 꼭 일해야 하고, 한 달에 두 번의 주말을 일해야 하는 조항이 있다. 어차피 크리스마스라고 초대하는 사람이 없어 휴일과 주말을 쉬는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나는 열심히 크리스마스와 새해와 주말에 병원을 나갔다.

그렇게 살다 보니 파티로 시끌벅적한 휴일을 조용히 보내는 데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그랬었는지, 점점 사람들과 모여서 지내는 것이 낯설어져 갔다. 병원을 그만두고도 한동안은 추수감사절과 성탄절 그리고 한 해의 마지막 날을 집에서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며 지냈다. 집에 있는 게 좋다고 스스로 위안을 해도 가기 싫어서 안 가는 것과 갈 곳 없어서 못가는건 사실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타지에선 친구 만나기 힘들다고 하지만 이제 내게는 친구들이 생겼다. 대부분이 유학생의 신분으로 미국에 와 정착하게 된 사람들이라서, 휴일에 갈 곳 없는 사정을 잘 알기에 서로 챙기며 초대를 하며 휴일을 같이 지내고 있다.


워낙 나는 그렇게 사람들을 챙기고 살갑게 대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초대를 받아 보니 나도 초대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고, 초대하고 초대 받으면서 맛난 것과 좋은 것을 같이 나누는 이웃사촌이 되었다.

집안을 꾸민다고 장식을 하면 오히려 집이 더 지저분해지는 나의 미적 감각에 한번도 성탄절에 집을 꾸며본 적이 없었지만 올해는 크리스마스 장식용 전구와 꽃을 사서 집안을 장식했다. 반짝이는 전구가 집안을 밝히니 정말 12월 같고, 성탄절이 다가옴이 느껴진다.
갑작스러운 나의 실내장식에 아들은 이러다 불나면 어쩌냐며 잠자기 전에 모든 전구의 불을 다 끈다. 종일 장식 전구를 켜놓으면 전기세 많이 나오는 거 아니냐는 남편에게 절전 전구라서 괜찮다고 친절하게 답을 해줬다.

장식 전구가 켜진 불 꺼진 집안에 앉아 새로 산 머그로 커피를 마시면서 가만히 집을 돌아본다. 일하면서 공부하면서, 집안일 돌보면서, 아이를 키우던 그 옛날에 느껴볼 수 없었던 여유다. 옛 동료 간호사들이 대학원을 마치고 NP 가 된다는 소식을 SNS에서 볼 때마다 중도에 포기한 내 옛 간호사의 삶이 생각나기도 하지만, 이런 여유 누리며 초대하고 초대받는 삶을 선택한 걸 후회하진 않는다.

2018년이 다가오고 있다. 내년에도 가족과 소중한 이웃사촌들과 하루하루의 삶을 살 것이다. 오늘이 어제와 같으면 같음에 감사를, 어제와 다른 도전 받는 새날이 오면 모험할 수 있음을 감사하며 올해도 초대해 귀한 음식을 나누고 챙겨준 이웃사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메리 크리스마스!

<나 리/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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