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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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김치

2017-12-16 (토) 박미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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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정문으로 가려면
골목길 미루나무를 지나고 석류나무
한 그루 서 있다
집단의 아이들이 한 아이에게 몰려들면
석류에서는 붉은 강이 흐른다

운동장을 지나고
나즈막한 몇 개의 계단을 오르면
잔디가 뿌리채 뽑혀 있고
녹색 게시판은
교장실을 향해 무릎을 꿇고 있다

칠판은 비뚤어지고
백묵은 부러지고

책은 비어 있다
아이들은 그림자들을 모아서 잘게 부수고
어떤 아이는 뒷산에서 뱀을 잡아 온다
돌연변이의 절벽
석류에서 노을이 떨어진다


그림자들이 환하다
실눈 뜨고 보고 있는 사람들
아이들이 유리 창문 안에 갇혀 있다
창살 있는 문 안은 이미 포섭 되었다

세상의 시선은 겨울이라는 것을
얼마나 차가운지 견디어 보라
어두운 근육들이 찰칵!
소리를 내며 닫힌다

숙성되는 자만이 문을
나올 수 있다

<박미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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