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끼려면 라커펠러 센터 크리스마스 트리, 라디오시티 스펙타큘러, 메이시스 백화점의 산타랜드, 브라이언트 파크 크리스마스 마켓, 뉴욕시티 발레단이 공연하는 조지 발란신의 호두까기 인형 등을 하나라도 경험하면 된다.
올해는 지난 화요일 저녁에 맨하탄 파크 애비뉴 세인트 바돌로매 교회의 크리스마스 콘서트에 갔다. 1835년 1월에 설립된 이 역사적인 교회의 제단 아래부터 파이프 오르간이 연주되는 입구까지 수백석의 자리는 백인들로 가득 찼고 동양인은 우리 일행, 입양된 한국아이 정도였다. 이 유서깊은 교회의 성가대가 부르는 캐롤은 상당히 웅장하고 화려할 것 같은 기대감을 주었다.
그런데 까만 평상복 차림의 20명 남짓 남녀 성가단이 부르는 캐롤은 은은하니 작고 섬세하여 슬프기까지 했다. 처음엔 좌석이 뒤라서 그런 가 했는데 어느 순간 깊은 산골마을에 흰눈이 내리고 마을 언덕에 서있는 자그마한 교회에서 들리는 맑고 투명한 종소리를 들었다.
내친 김에 라커펠러 센터 크리스마스 트리도 보러갔다. 올해는 펜실베니아에서 가져온 독일 가문비나무로 5만개가 넘는 색색의 조명이 장식되어 관람객을 맞고 있다. 크리스마스 트리 주변에는 총을 든 완전무장 경찰들이 경비를 서고 있지만 사람들은 개의치 않고 기념촬영을 했다. 길목 세 군데 코너에서는 구세군 남녀가 자선냄비를 가운데 두고 노래하고, 춤추고, 종을 흔들며 온몸으로 불우이웃 돕기를 호소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힐끗 쳐다볼 뿐 무심한 표정으로 지나갔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시작은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라고 한다. 크리스마스 이브 밤에 산책하던 루터는 달빛에 환하게 빛나는 전나무를 보았고 그 전나무 하나를 집으로 가져와 눈 모양 솜과 리본과 촛불을 장식한 것이다. 이후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이 1880년 크리스마스에 줄에 이은 전구를 뉴저지 연구소 밖에 걸었고 1882년 에디슨의 동업자가 빨갛고 파랗고 하얀 전구 50개로 트리 장식을 했다고 한다. 브라질의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의 ‘향기나는 크리스마스 트리’ 이야기는 감동이다.
‘크리스마스 이브, 프랑스 피레네 산맥의 생마르탱에 있는 작은 마을의 교구 사제는 미사 올릴 준비를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어디선가 놀라운 향기가 풍겨오고 있었던 것. 신부는 교회 밖으로 나갔다가 쭈그리고 앉은 한 소년과 마주쳤다. 소년의 곁에는 황금으로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것이 놓여있었다.
“대체 이 나무를 어디서 찾은 게냐? ”, “오늘 아침에 어머니가 돈을 주시면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 멋진 나무를 사오라고 하셨어요, 마을 하나를 지나다가 홀로 지내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났어요, 저는 따뜻한 식사나 하시라고 제가 가진 돈 중 얼마를 그 할머니께 드렸어요, 그리고.....“
소년은 큰 감옥 앞에서 죄수들과의 면회시간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았고 누군가 파이 한조각 살 돈도 없다고 하자 점심 사먹을 돈만 남기고 다 주고 만다. 그리고 나무 파는 장에 가서 식당에 갔는데 다른 마을에서 온 아이가 이틀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고 하자 남은 돈을 주고 집으로 향한다. 오는 길에 전나무 가지를 하나 꺾은 다음 그걸 다듬어 근사하게 만들어보려 했는데 나무가 쇳덩이처럼 무거워지고 말았다고 한다.
신부가 말했다. “이 나무는 천상의 축복을 받았다. 천사들은 네가 나무를 끌고 가는 동안 그 잎사귀를 황금으로 바꾸어 놓았단다. ”
요즘, 경기가 좋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나와 내 주위에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이 소년처럼 크리스마스를 홀로 지내는 이, 크리스마스에 파이 한조각도 살 돈이 없는 이, 이틀간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이에게 비록 내가 가진 것이 적지만 그것을 나누어 주면 우리도 기적을 체험할 까?
평범하고 약소한 것 하나가 춥고 쓸쓸한 사람들의 마음에 등불 하나를 켜주어 그를 살릴 수 있다면야, 우리는 그 정도 일은 기꺼이 할 용의가 있을 것이다. 작고 소박한 콘서트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선행 하나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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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