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집필한 ‘로마인 이야기’에 보면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절, 조상대대로 부호였던 정치가 소 폴리니우스의 이야기가 있다. 소 폴리니우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적 책무)’ 정신이 강해 사회적 헌신이나 기부에 열심이었다. 그는 북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모코 호숫가에 있는 고향에 신전과 도서관을 기증했고 차세대 육성도 적극적으로 한 인물이다.
그는 100만 세스테르티우스에 달하는 토지를 당국에 기증하면서 연간 3만 세스테르티우스 정도의 수익금을 빈곤가정의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육영자금으로 쓰도록 하였다. 지도층 인사의 이런 선행이나 기부행위는 비단 소 폴리니우스에 해당된 것이 아니라 그 당시 고위층은 이런 행위를 누구나 해야 할 사회적 책무였다.
로마 고위층의 기부행위나 부의 사회 환원은 오늘날 기부문화가 가장 발달된 미국을 보아도 우리가 보도에서 접한 그대로 전혀 손색이 없는 상황이다. 우리는 이를 보면서 미국이 왜 위대한 나라가 되었는가를 실감하면서 진한 감동을 받곤 한다.
우선 미국부호의 기부문화 하면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를 들 수 있다. 카네기는 “노후에 부자인 채 죽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며 자신의 철강회사를 판 거액의 자금으로 여생을 자선활동으로 보냈다. 이후 록펠러, 포드 등이 자선사업을 위한 재단설립에 나섰고 이들의 기부정신은 오늘날 세계적인 부호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 마크 저커버그 같은 기업가들로 이어졌고 이들의 기부정신은 이제 미국사회 전반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을 세계 최강국이 되게 하는 근간이 되고 있다.
반면 한인사회는 이런 정신이 희박해 보인다. 특히 요즘같이 경제가 어려울 때는 더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사회 경제상황은 지금 한창 빠른 회복세와 상승국면을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한인사회는 냉각된 경기 상황이 도무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블랙프라이데이 샤핑 온라인은 대승을 거두었다고 환호하고 야단이지만 한인업계는 연말을 넘기기가 어려운 업소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소리만 들린다.
실제로 우리 눈엔 온통 어렵다는 뉴스들뿐이다. ‘미국인 가계부채 역대최고 수준’ ‘퀸즈지역 주민 12명중 한명이 배고픔에 시달린다’ ‘한인들 장바구니 휘청 댄다’ 등등... 전반적으로 어둡고 힘들다는 기사들이다.
우리는 지금 또 한해를 보내고 마지막 달 12월을 맞고 있다. 어느 때 보다도 한인들 사이에 서로 돕고 나누면서 위로하고 격려하는 시기가 돼야 하지 않을까. 연말연시다 송년모임이다 하면서 흥청거리는 이면에는 분명 외롭고 경제적으로 힘들어하는 한인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크고 작은 관심과 온정은 삭막하고 버거운 삶에 크나큰 용기와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벌써 거리 곳곳에는 빨간 자선냄비가 등장하면서 이웃사랑을 일깨우는 종소리가 울리고 있다. 경기가 말라버린 한인사회에서 얼마나 호응을 얻을지는 미지수다. 냄비의 온도계가 뜨겁게 팔팔 끓어올라 우리 사회가 아직도 온정이 메말라있지 않음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우리에게는 이웃사랑의 소중함과 필요성을 절감하며 한해를 마감할 이유가 있다. 이 세상 모든 구성원은 혼자서는 살 수 없고 제각기 서로에게 빛과 희망이 되는 소중한 존재로 공존하고 있는 점에서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한 것이 생각난다. 미국의 유명한 컨설턴트 스티븐 코비가 제시한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가지 습관’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한다면 ‘나눔의 마음이다’라고 말이다. 성공하는 사람은 나눔도 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이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나눔이 없는 사회는 절망적인 사회다’ 라고 했다. 미국인들처럼 거창하게 부의 사회환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서로 조그만 나눔이라도 같이 한다면 그래도 차가운 연말이 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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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