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좋은 갑이 되자

2017-08-11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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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4성장군 부인이 대단한 갑질 의혹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나라 지키려고 간 군인들이 왜 식모살이를 하고 노예생활을 하는 지, 군 인권센터에 고발된 폭언과 무례함, 도를 넘은 비상식적인 행동이 차마 시시콜콜 읊기가 민망할 정도다.

지난달 31일 군인권센터에서 폭로한 공관병 갑질 사건을 보면 언제 어디서라도 높은 분의 부름에 응하기 위해 전자팔찌를 차는 것은 기본, 텃밭 농사를 짓고 심지어 비슷한 나이의, 모시는 분의 아들에게 간식을 챙겨주고 속옷을 빨아주고 있다. 그 공관병도 누군가의 귀한 아들인데 말이다.

대장 부인 전모씨는 7일 군 검찰에 출석해 “아들 같은 마음으로 대했다. 그들에게 상처가 됐다면 형제나 부모님께는 죄송하다”고 말한 것이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들의 화를 더욱 돋우고 있다.


왜 아들같은 사병에게 냉장고에 넘쳐나는 과일은 나눠 먹이지 않았는가? 또 9대의 냉장고가 돌아가는 전기요금은 누가 내는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자 군에 간 국군 장병을 이렇게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며 야박하고 인색하게 굴어도 되는 가.

최근 수년간 한국 상류층의 갑질은 늘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음에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 갑을 관계는 조선시대 관존민비 사상이 남아있는 역사적인 산물로 한국에만 존재하는 법률용어라고 한다. 갑을(甲乙)이란 계약서상 계약하는 갑과 을을 지칭하는 단어라 한다.

갑은 상대적 자리가 높은 계약자, 을은 자리가 낮은 계약자를 이르는데 갑의 횡포를 갑질이라 한다. ‘갑’에 접미사 ‘질’을 붙인 신조어로 갑질이란 못되고 나쁜 짓을 말한다.
지위, 권력, 재산을 이용하여 비인간적, 폭력, 폭행, 협박 같은 정신적 학대를 일삼는 이들, 우리 한인사회에도 있다. 그렇다면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일까?

맨하탄이나 퀸즈, 뉴저지의 한인밀집지역의 건물주가 갑이고 그 건물에 렌트 들어서 비즈니스 하는 자영업자가 을이다. 요즘 건물주의 터무니없는 렌트 인상과 더불어 치솟는 인건비와 보험료로 인해 자영업자들은 폐업하거나 폐업직전까지 가고 있다고 한다. 비즈니스 관계에서는 거래처가 갑이고 납품업체가 을이다. 갑이 을에게 납품을 취소하면 당장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진다. 그래서 을은 갑의 눈치를 본다.

뉴욕의 크고 작은 자영업의 한인 사장님은 갑이고 직원들은 을이다. 직장에서 상급자는 갑이고 지위가 낮은 이는 을이다. 한인들이 주로 가는 한인마켓이니 식당, 제과점, 미용실 등등 그곳에서 고객은 갑이고 서빙하는 직원이나 계산대 직원, 주차요원은 을이다. 사는 집의 랜도르드는 갑이고 매년 올라가는 렌트에 전전긍긍하는 세입자는 을이다.

이렇게 우리는 수시로 갑이 되었다가 을이 되었다 한다.
갑의 자리에 있는 자들은 내가 이 자리에 어떻게 올라왔는데 하며 하급자를 종 부리듯 하지 않는가?

서빙 하는 직원의 서비스가 나빴다고 팁을 빈약하게 준 적은 없는가? 주차된 차를 늦게 가져왔다고 짜증낸 적은 없는가? 나도 모르게 을을 구박하고 멸시하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갑질은 못난 사람이 한다. 자라온 가정환경에 문제가 있었거나 머리에 든 것이 없어 마음이 허한 사람, 자신이 못났다는 열등감에 쌓인 사람이 그것을 감추기 위해 갑질을 한다. 돈과 권력, 지위가 있다고는 하나 불행한 사람의 빗나간 우월감이 갑질로 나타나는 것이다.

갑의 자리에 있을 때 좋은 갑이 되자. 을에게 야박하게 굴지 말고 무시하지 말고 눈치를 보게 만들지 말자. 갑의 자리에서 정당한 규칙, 정당한 지시를 했다면 아무도 겁질 했다고 안한다.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아랫사람에게 조금만 마음을 써주어도 좋은 갑이란 소리를 듣는다.

“진정으로 그 사람의 본래 인격을 시험해 보려거든 그 사람에게 권력을 쥐어보라”고 한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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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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