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왜 조나단 에드워즈인가

2017-08-11 (금) 정부흥/박사·예일대 조나단에드워즈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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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58)는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북미 대륙 매사추세츠 필리머스에 1620년에 도착한 이후 약 80년이 지난 1703년 10월 5일에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커네티컷 하드포트로부터 약 10마일 위에 위치한 이스터 윈즈에 태어나서, 뉴헤이븐의 예일대를 졸업하고, 뉴헤이븐 출신 아내를 맞았고, 영국으로부터 뉴잉글랜드(그당시 13개주로 된 신영국)가 1776년에 독립하여 미국을 건국하기 20년 전 까지 살았던 인물이다.

프린스턴대학 4대학이었던 사무엘 데이비스는 동시대를 살면서, “미국이 배출한(America ever produced) 가장 심오한 사상가이며, 가장 위대한 신학자였다”; 그리고 지난 세기의 가장 유명한 영국 설교가 마틴 로이드 존스는, “청교도들은 알프스 산에 비유하고, 루터나 칼빈은 히말라야 산에 비유한다면, 조나단 에드워즈는 에베레스트 산에 비유하고 싶은 사람이다”라고 평가했다. 그리하여 지금도 많은 미국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영어과목과 철학 및 윤리 그리고 역사 과목에서 에드워즈의 저서들을 읽고 그의 사상을 살핀다.

사실, 본 필자는 이런 사실들과 평가들을 전혀 모르는 채, 1986년 대학 3년 때 필독서였기에 읽게 되었는데, 바로 그 책이 하드포드에서 차로 1시간가량 쭉 올라가면 나오는, 매사추세츠 주의 노스앰톤 마을에서 에드워즈가 목회하는 동안 사람들이 믿음을 갖고 변화 받고 회개하는 사건을 기록한 “놀라운 회심 이야기 (Faithful Narrative of the Surprising Work of God, 정부홍 역, 기독교문서: 1997)”이라는 작은 책이었다. 이 책을 번역 출간하면서 서문에서 소회를 남기기를: “나는 이 책을 10회 이상 읽었다. 이 책은 영적 대각성 기간 동안에 일어났던 일을 내 뇌리에게서, 아니 내 영혼에서 지울 수 없는 또 하나의 사건이 되게 했다.


본서에 소개된 회심 장면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내 몸에서 전율이 흐르고 떨려 한여름에도 추위를 탈 정도이다. 그리고 내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점검하게 되고 내 자신은 과연 구원에 이르는 회심을 하였는가 자문해 볼 수 있었다.” 이 책 때문에 에드워즈에 30년간 빠져 살게 되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대서양을 건넜던 이민 1세대들이 미신대륙에 정착하여 성공을 이룬 일세기가 지날 때, 신앙심과 도덕성은 점차 쇠퇴하고 자유주의 신앙과 사상들이 만연하고 신앙적 해이와 도덕적 타락이 창궐해 가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허다하게 밤이면 쏘다니며, 술집에 가고, 음란 행위에 빠져 있었다….” 그때에 에드워즈는 죄인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설교를 하였을 때에 사람이 감화를 받기 시작하였으며, 또 조지 휘필드 목사가 방문하여 설교함으로써 그 마을에서 큰 부흥의 불길이 점화되어 인근과 뉴잉글랜드 전역으로 확대되어 갔다.

그때에 에드워즈의 가장 유명한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든 죄인들”이란 설교를 통하여 여러 곳에서 부흥을 일으켰다. 갑작스럽게 사람들이 변화되어, 술집은 텅텅 비고 예배당은 구원받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단기간 내에 가득 차게 되었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신자들이 구원받았는지 자문하며, 불신자들은 어떻게 하면 구원받을까 요청하였다. 그렇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밤낮으로 근심하고 우울해 하기까지 했다. 이런 회심과 회개와 부흥은 뉴잉글랜드 사람들의 삶과 종교와 정치와 문화 그리고 전 영역에 걸쳐서 새로운 변화를 촉진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올바른 설교자들과 지도자들이 키우고자 프린스턴(1746)을 위시한 유명 대학들이 이 시기에 설립되었다.

그리고 종교적으로는 교파 교회의 분열과 다양한 교파의 출현, 인디언 선교운동과 사회봉사와 노예해방운동이 봇물을 이루었다. 이런 열매들은 미국 독립 정신과 건국 정신의 토대를 놓게 하였다.그렇지만 23년간 섬긴 그 교회로부터 해고되어, 차로 약 한 시간 서쪽에 위치한 스탁브릿지라는 인디언 마을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며, 그곳에서 중요한 걸작들, 곧, ‘자유의지’, ‘원죄론’, ‘천지창조의 목적‘ 및 ’덕의 참된 본성‘을 남겼다.

끝으로 프린스턴 대학의 학장으로 초빙 받았지만 부임 3개월만에 운명을 다했다. 그가 남긴 유산은 오늘도 미국과 한국의 사회와 그 교회를 깨우며 풍성하게 만들 것이다.

<정부흥/박사·예일대 조나단에드워즈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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