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중국사의 후한(後漢) 말기에 여남(汝南)이라는 땅에 허소와 그의 사촌 형 허정이라는 두 명사가 살고 있었다. 이들은 매달 초하룻날 고향사람들의 인물평을 해 주곤 하였다. 어느 날 삼국지(三國志)에 등장하는 조조(曹操)가 아직 청년의 시절에 허소와 허정을 찾아왔다. 조조는 정중하게 엎드려 두 명사에게 자신의 인물평을 부탁했다.
허소는 조조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 본 후에 얼굴을 돌이키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이 때 조조는 숨기지 말고 솔직하게 자신의 인물평을 말씀 해 달라고 사정 했다. 하도 간곡히 부탁하는 조조의 마음을 헤아려 허소는 할 수 없이 본 그대로 평을 해 줬다.
“당신의 치세(治世)는 간신이요, 난세(亂世)에는 영웅(英雄)이 될 사람이오.” 이 말을 들은 조조(曹操)는 매우 기뻐했다. 아마도 조조는 ‘난세의 영웅’이라는 말을 듣고 기뻐했던 것 같다. 누구나 그렇듯이 자신에게 유익한 말을 듣기 좋아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 후에 중국 남송(南宋) 말에서 원(元)나라 초에 걸쳐 활약했던 증선지(曾先之)가 편찬한 중국의 역사서 십팔사략(十八史略)에 의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허소가 기록한 인물지(人物志)인 논영웅(論英雄)에도 기록되어 있다.
논영웅(論英雄)이란? 풀 가운데에서 빼어난 것을 영(英), 즉 꽃이라 하고, 짐승 가운데 특출한 것을 웅(雄), 즉 수컷이라 하여 사람이 문예와 무예가 출중해서 다른 사람들 보다 남다르면 영웅(英雄)이라 칭하며 이를 논 한 것이 논영웅(論英雄)이다. 여기에 조조와 허소의 만남이 기록되어 있다.
허소는 매월 초하루(첫날)에 마을 사람들의 인물평을 하는데 주로 칭찬과 비평을 함으로써 매달 새로운 마음으로 한 달을 시작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를 하룻밤에 인물평이라 하는 뜻으로 월단평(月旦評)이라 하였다. 허소로 인한 자신의 평으로 인해서인지 조조(AD155~AD220)는 난세에 영웅이 되었고, 이후 중국 후한 말기의 정치인으로 위(魏) 나라 건국의 기초를 닦았다.
사람들은 누구나 평(評)이라는 것을 받는다. 자신만의 삶의 방식으로 인한 과정과 결과로 인해 평(評)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때론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에 의한 평(評)이 생겨날 때도 있다. 어떤 때는 예기치 않은 평으로 인해 기뻐할 때도 있고, 슬퍼할 때도 있다.
현대에 살아가는 나에 대한 일거수일투족은 어딘가에 기록되어 가고 있다. 자신의 기억 속에서도 존재하지만 나와 관련이 있거나 나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도 기록되고 있다. 이렇게 나의 삶의 기록이 쌓여서 평(評)이 되는 것이다. 매달 초에 마을사람들을 평한 허소와 허정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지금까지 살아온 한 달을 뒤돌아보고 반성 할 것은 반성하고, 위로와 칭찬을 받을만한 것들은 위로와 칭찬을 받아 다가오는 한 달을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고 생각 할 수 있다. 그럴수록 자신을 돌아보며 바로 살아가야 한다고 필자는 주장하고 싶다. 특별히 크리스천이라면 사람 앞에서 보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남들의 평(評)은 곧 나에 대한 삶의 결과이다. 마음속에 걱정이 있는 사람은 얼굴에 근심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마음에 기쁨이 있는 사람은 얼굴에 미소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지금의 내 얼굴은 내가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나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나에 대한 평은 고스란히 나의 몫이다. 남들의 평으로 인해 나를 발견하기 이전에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들에 의해 존경받고 칭송받는 이 시대에 영웅(英雄)이 나지 않을까?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디모데후서 2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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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