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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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눈물

2017-07-29 (토) 안영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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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가면서 더 간절하게 생각나는 이름은 ‘엄마’라는 근원적인 단어이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부르기 시작했을 그 이름이 날이 갈수록 더 그리워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젊어서는 항상 그 자리에서 먹여주고 입혀주는 생명줄이었을 뿐,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엄마의 자리가 후대로 대물림되면서 받기만 했을 때는 몰랐었던 헌신들이 실은 눈물을 먹고 자라는 자식들을 위한 제사의식이었던 것을 뒤늦게나마 깨달아가는 것이다.

자식은 엄마의 신이며 신 앞에 가기 위한 피 뿌림은 필연적이다. 용서받아야 할 많은 죄를 사함 받고 한줌의 재로 남을 때까지 그 길에 뿌려지는 눈물은 필연적이다.
짧다면 짧은 25년 동안 엄마와 같이 살다가 미국으로 시집간 나는 엄마의 눈물을 본 기억이 없다. 그 시절 많은 엄마들이 그랬겠지만 여자 혼자 딸 둘을 키우며 얼마나 피 눈물을 흘렸을지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가난하고 힘든 시절에도 조용조용 장단 맞춰 부르던 노랫소리만 생각날 뿐 한 번도 눈물 바람 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던 엄마는 지병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자식들에게 강인한 인상만 남기고 싶으셨던 것일까. 그렇게 힘든 내색 안하고 주무시다 편안히 하늘나라로 가셨다.

돌 캐는 산으로 끝도 없이 자갈길을 걸어 올라가며 가는 비가 내리는 산길에 고달픈 엄마와 철모르는 딸이 손을 잡고 돌부리에 걸리어 넘어지면서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해야 할 산막을 찾아 허우적 허우적거리는 광경이 아주 어릴 적 기억으로 희미하게 남아 있다. 비에 젖은 얼굴에는 어머니의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았을까 .

삶이라는 명제 앞에서는 체면과 부끄러움도 말려야하는 양말과 신발처럼 김이 모락 모락나는 구들장에 널어놓아야만 했을 것이다.

겨우 겨우 도착했던 산막의 주인이 얼마나 도움을 주었을지는 모르지만 산막이 거기 있을 것이고 거기에는 주인이 있을 것을 믿으며 엄마는 힘든 산길을 올라갔던 것이리라.

그 후로도 돌 캐는 산으로 올라갔던 기억은 없지만 힘들게 올라가다 보면 지친 몸을 누일 잠자리는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용기는 엄마의 말없는 유산이리라.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은 하늘에서 흘리는 엄마의 눈물이고 바닷가의 헤아릴 수 없는 조약돌들은 엄마눈물의 결정체인 것이다.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들 중에서 엄마와 자식으로 만나 세파에 부딪히며 함께 했던 시간들이 속절없어 엄마는 하늘에서도 눈물 흘린다.

<안영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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