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더불어 살기

2017-07-28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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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새벽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서 차로 2시간30분 거리인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 35번 도로변 월마트 주차장에 세워진 트레일러 안에서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냉방장치가 고장 나 폭염 속에 화덕이 된 이 트레일러 안에서 질식, 호흡곤란, 뇌손상 등으로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8명, 이후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2명이 추가로 숨졌다.

미 당국은 이 트레일러에 200명의 이민자가 타고 있었고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동안 그들 대다수가 다른 차량을 타고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사망자들은 밀입국 하려다가 참사를 당한 것이다.

20세기초 미국이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구가하면서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가 도래 했다. 세계 각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몰려왔다. 원래의 아메리칸 드림은 자유, 평등, 민주주의의 이상사회를 이루려는 꿈을 말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경제적으로 성공, 자녀의 성공을 뜻하는 것으로 의미가 변했다.


미국은 월남전을 비롯한 여러 전쟁에 참여하고 실패한데다 2001년 9.11테러, 2008년 이후 경제 위기에 봉착하면서 더 이상 아메리칸 드림은 찾기 힘들어졌다. 더욱이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행정명령과 미국 우선주의는 이민자의 물결을 멈칫거리게 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일자리를 찾기 힘들어 역이민 하는 히스패닉이 늘어난다더니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아프리카나 남아시아 지역에서는 지중해 바다를 통해 유럽으로 가다가 수장되느니 미국이 난민의 자유와 일자리를 얻기가 더 수월하다며 밀입국하고 온두라스,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등에서도 오다가 지쳐 죽거나 살해당할 위협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고 있다. 이들 모두는 가난, 전쟁, 재난으로 자국에서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브로커들은 번번이 당국의 눈을 피해 새밀입국 루트를 개발하고 있다.
트레일러에서 구사일생 살아난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뉴욕, LA, 시카고 같은 대도시로 흩어져서 일용직으로 생계를 꾸려나갈 것이다. 뉴욕에선 히스패닉 일용직을 쉽게 볼 수 있다. 수퍼마켓, 식당, 이삿짐센터, 건설현장, 가정부, 잔디깎기 등의 육체노동으로 번 돈을 고향의 가족에게 송금할 수 있으면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날이 춥거나 업소가 문을 닫으면 당장 하루 끼니 때우기도 힘이 든다. 일이 없으면 당장 밀입국 브로커 비용이 일인당 수천 달러이니 빚에 쪼들리기도 한다. 이들이 허드렛일이나 농장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어느 세월에 합법적 신분을 획득하고 대학에 입학하는 자녀를 보고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고 할 것인가.

한인들이 히스패닉을 비롯 타인종 일용직과 관련되는 일이 많다. 자수성가한 한인도 많지만 근근이 그달 벌어 그달 먹고 사는 한인들도 많다. 그래도 우리 처지가 그들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같은 이민자인 이들을 돕고 있는 이들이 있다.

이삿짐 나르기, 페인트칠, 집 내부 수리 등에 타인종 일용직을 많이 쓰는데 일이 끝난 후 일당 외에 팁을 넉넉히 주는 한인이 있고 아침을 해결해주는 한인단체도 있다. 뉴욕과 뉴저지 지역의 어느 교회에서는 평일 아침, 빵과 커피의 아침을 주거나 점심제공과 함께 영어교육, 에어컨 수리 및 전기 기술, 페인트 기술 등 직업교육을 시키기도 한다.

플러싱을 갈 때면 습관적으로 노던블러바드와 파슨스 블러바드 주유소 앞을 보게 되는데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백팩을 맨 채 서서 일거리를 기다리는 이들을 볼 수 있다. 뉴저지 잉글우드, 팰팍 지역과 퀸즈 엘름허스트 루즈벨트 애비뉴도 마찬가지이다.

몹시 추운 아침, 교회 밴들이 거리를 돌면서 이들에게 김이 오르는 수프를 나눠주는 것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 이렇게 더불어 살면 되지, 뭐, 아메리칸 드림이 별 건가. ’ 타인종과 함께 화합하고 희망을, 꿈을 나누는 일, 이것이 오늘의 아메리칸 드림이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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