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 여름 밤의 꿈

2017-07-21 (금) 김갑헌/맨체스터대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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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夏至)가 지나 한 여름이 되었다. 이런 계절에 꾸는 꿈을 한 여름 밤의 꿈이라 부르는 것 일까? 세익스피어(Shakespeare)의 코미디 “한 여름 밤의 꿈”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이 들면 잠은 적어지고 이상하게 잔 꿈이 많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 일까?

성경에도 “마지막 때에…… 젊은이는 이상(vision)을 보고 노인이 꿈을 꿀 것이다.(요엘2:28)”라는 예언이 있다. 나의 꿈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말씀이지만 잔 꿈이 많아지면서 어느 꿈은 뜻밖에 심각한 생각을 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어제 밤 꿈에 내가 불치의 병에 걸려서 곧 세상을 떠날 것이고 마지막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당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고통 없이 살다 가려면 의사가 주는 약 한 알을 먹으면 열흘을 아무 고통 없이 살다가 조용히 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것 이었다.
삶은 어차피 고해(苦海)라는데, 비록 고통이 있어도 사는 날까지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러나 얼마 살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당하며 얼마간 삶을 연장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또 가족과 친지에게 그 견디기 어려운 시련을 안겨줄 필요가 있을까? 꿈속이었지만 나는 심각한 결정을 해야만 했다. 약 한 알을 먹고 열흘을 살고 조용히 가겠다는 결정 이었다. 약을 먹으니 눈물이 났다. 그리고 꿈을 깨었다.


꿈을 깨니 생각이 더 복잡했다. 자, 이제 내 앞에는 열흘이라는 시간이 펼쳐 있다면 이 시간 동안에 무었을 해야 할까?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그 것들에 순서를 매기는 일이 쉽지 않았다. 사하라 사막 속에 작은 텐트를 하나 치고 끝없어 보이는 사막의 순수함을 바라보며 며칠 지내다 갈까? 아니면 데드 밸리 (Death Valley)에 가서 주먹처럼 커다랗게 보이는 밤하늘의 별들을 쳐다보다가 조용히 잠들까?

그럴 것 없이 이제까지 살아온 삶을 별 일 없는 듯이 남은 열흘을 조용히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니 마음이 편했다. 아침 점심 저녁을 먹고 잔 꿈을 꾸며 잠을 잘 것이다. 주일에는 교회에 가서 예배하고 찬양하고 회개하고 기도할 것이다. 학교에 가서 남은 플라톤 강의를 다 마칠 것이다. 저녁에는 최근에 구입한 토키엔 (J.R.R. Tolkien)의 베렌과 루띠엔 (Beren and Luthien)의 처절하고도 슬픈 사랑이야기를 읽을 것 이다. 목요일에는 전처럼 골프장에 가서 한가한 골프를 즐기며 퍼팅이 안 된다고 불평 하겠지. 주말에는 밖에 나가 풀을 뽑고 잔디를 다듬을 것이다.

열흘이 되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불러 모으고 담담히 마지막 말을 해야 할 테데… 뭐라고 말해야 하나? 잘 있거라 나는 간다? 너무 오래된 유행가 같아서 좀 그렇고… I go now to my long fathers… among their mighty company I shall not be ashamed… 너무 토키엔 냄새가 나지?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나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다윗 왕 흉내를 내는 것이 주제 넘는 것 같다.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의 평범한 마지막은 아마도 눈물을 흘리는 것이겠지. 여보, 먼저 가서 미안 하오 건강하게 더 살다 오시오. 엄마를 잘 모셔라 그리고 힘써 잘 살아라. 조상 대대로 지켜온 예수님 신앙을 잃지 말고 지켜라. 천국 문에서 다시 만나자… 그리고 잠들 것이다. 친구에게 꿈 얘기를 했더니, 자기 동네극장에 Deathless라는 연극을 공연 한다고 했다. 약 한 알을 먹으면 나의 꿈과는 정반대로 영원히 죽지 않는데, 그 약을 먹을 것이냐? 자기는 먹지 않고 어느 정도 살다가 가겠다고 했다.

죽음 없는 이 세상의 삶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죽음은 창조자의 선물이라던 토키엔을 다시 생각했다. 너에게 열흘이 있다면 무엇을 할 것 이냐? 그 친구는 잘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김갑헌/맨체스터대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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