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창조의 영감

2017-07-15 (토) 프리스카 전/화가·포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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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저지 자문위원 글마당

어느 시인의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가슴 아파하였던 시가 생각난다. 이 시인이 역경가운데 기다리는 희망을 노래했듯이 우리 모두는 동변상련의 끓는 가슴을 안고, 안아주며 꽃이 피는 봄을 맞이하게 되는 가 보다. 어느덧 꽃봉오리는 터져 나오고 푸른 잎사귀들은 연한 봄의 싱그러운 푸른 채색으로 옷 입고, 추운 겨울의 바람과 눈을 헤치고 죽지 않고 살아났노라고 부활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눈을 들어 보는 자연은 창조주 하나님의 그 오묘한 솜씨를 오늘도 보여주고 있음에 감탄하며, 인생의 연륜이 더해 갈수록 우리 삶은 시야에 보는 눈에서 가슴으로, 또 손끝으로 그리게 되면서 그 신비의 협주곡을 감사하며 살아가는 삶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며칠간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조용한 시골집을 찾아 자연과 마주 대하게 되니 마치 타임머신이 장치된 듯 생각과 마음도 천천히 흐르고, 신선한 공기와 푸른 숲 속에서 잃어버렸던 감성이 움틀거리는 기운을 받는 것이 느껴진다. 저녁 해가 떨어지면 밤하늘을 볼 수 있는 마음의 창문이 열리어 보지 못했던 은하수의 신비한 자태를 보게 되고, 희미하게 비춰주던 달과 별빛이 황홀하게 내려 비치니 무거운 마음에도 새어 들어오는 듯 마음의 여유를 새삼 되찾는 기분이다.


나는 전에 저속으로 촬영한 사진들을 볼 때마다 생명의 신비를 한층 더 새롭게 느끼게 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순간순간 연속성을 가지고 계속적으로 이어가는 생명의 주제가 모든 라이프의 image-bearers이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은 창조주 하나님의 아름다운 손길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이기에 거기에는 그분의 숨결이 함께 하고 있으므로 창조자의 sign이 그려져 있다. 그래서 자연도 지속적으로 계속되는 생명으로 이어가고, 그 신비를 우리에게 ‘LIFE OF THEME’ 가 유유히 흘러가고 있나 보다. 우리 인간에게도 그 창조의 영감을 주셔서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기쁨을 기쁘게, 즐거움을 주위에 나누어주며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다.

천지를 지으신 전능자의 손길은 얼마나 우리 인간들을 사랑하시기에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주셨을까? 창조의 기사를 보면, 셋째 날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기에 좋았더라고 기록하고 있음을 보고, 과연 그의 위대하신 손길을 느끼게 된다.

가까운 친구가 웨체스트에 반평생을 살면서 늘 정원을 가꾸고 땅을 고르고, 나무들을 자식처럼 가꾸며 하던 말이 생각난다. “이 조그마한 집이 내가 은퇴 후에 살아야 할 고향 같은 집이라며 꽃을 심고, 나무 울타리를 세우며 분수를 만들고, 각양 실과나무를 심으며 살아왔다.” 과연 그 친구가 꿈꾸던 그에겐 낙원과 같은 정원으로 만들게 됨을 보며 감탄과 찬사를 보낸다.

봄이 되면 가든 클럽 맴버 파티를 돌아가며 열면서 자신들이 가꾼 예쁜 정원의 꽃과 나무를 선 보여준다. 그리고 새끼 친 나무를 분양하며 서로 그 나무를 잘 기르고 거기에 필요한 정보와 음식을 나누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고 창조의 영감을 나누는 감사하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꽃 한 포기를 귀하게 여기고 잘 길러달라고 하는 그 마음은 사랑의 주제가 이어져가는 “보기에 참 좋았더라”고 하신 창조주의 인간을 지으신 그 마음으로 돌아가는 즐거움이리라 이해하고 우리의 삶을 새롭게 만드는 계절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T.S 엘리엇의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라는 시에서 그는 황무지 같은 인간의 정신적 메마름, 전후의 황폐한 정신적 상황을 황무지로 표현하면서 생명의 부활을 약속받은 이 찬란한 봄의 계절에 죽은 목숨만 이어가고 있는 잔인한 운명을 읊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살아있는 자의 슬픔”의 글은 이와 같은 일맥을 같이 한다 하겠다.

삶에 몸부림이 가장 강렬한 4월이 잔인한 달이라고 한 것은 반어적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우리와 민족도 이러한 고통을 체험하면서 죽은 땅에서 그토록 추억과 향기가 감도는 라일락이 피어 올랐으면 하는 바람이다.

바람이 강하게 부는 수많은 가지들 사이로 밝은 햇살에 반짝이는 잎사귀들을 보았으면 한다. 그럴 때 우리 삶의 주제가 계속 이어지는 창조의 영감으로 더욱 풍성한 삶을 서서히 흐르게 하지 않겠는가.

<프리스카 전/화가·포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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