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엘 정신

2017-07-10 (월) 김창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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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엘‘(goel)은 뜻밖에 당한 형제의 고통이나 어려움을 보고 모른 척하지 않는다는 한 가족 의식과 자비로운 형제애를 말한다. 고엘 제도는 이스라엘이 애급의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들어갔던 청동기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열강이 서로 치열하게 분투하고 대립했던 청동기 이후의 이스라엘 역사는 고난과 시련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부침(浮沈)의 과정을 거쳤다.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훼파된 후에도 이스라엘 민족은 2,000년 동안 세계를 유랑하며 나그네처럼 살았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어디를 가나 고엘 정신을 되살려서 그들의 공동체를 안정시켰고, 세계에서 가장 안정되고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다.

. 저녁 무렵 뮌헨의 중심가는 눈발이 세차게 내렸다. 일과를 마치고 돌아가는 인파를 싣는 버스로 분주하고 혼잡했다. 그때 나치 친위대가 버스를 정차시키고 올라와 외쳤다. “한 사람도 움직이지 마시오. 신분증 검사합니다.”


버스 뒤에는 신분증 없는 유대인을 체포하여 수용소로 호송할 군 트럭이 대기하고 있었다. 버스 맨 뒷자리에 웅크리고 앉아있던 시프라(Shifra)라는 중년 여인은 순간의 공포와 두려움으로 온 몸을 떨기 시작했다.

시프라 여인 옆에 않아있던 한 중년 신사가 물었다. “부인, 왜 그렇게 두려워 떠십니까?” “제겐 신분증이 없습니다. 전 유대인입니다. 저들이 나를 체포하여 수용소로 끌고 갈 것입니다.” 새파랗게 질린 시프라 여인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떨고만 있었다.
그때 그 중년 신사는 시프라 여인을 향하여 손가락질 하며 큰 소리로 욕을 해댔다. “이 멍청하고 한심한 마누라야, 내가 정말 미치겠다. 미치겠어.”

나치 친위대원이 왜 그렇게 고함을 지르고 야단이냐고 물었다. “아니 제 마누라가 신분증을 또 잃어버렸다네요. 정말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친위대원은 중년 신사의 어깨를 두들기며 한바탕 웃고 지나갔다. 그 신사는 유대인이었다. 그리고 그는 지혜와 자애를 갖춘 ‘고엘러’(goeler)였다.

고난당하는 형제를 보호하고 책임지라는 고엘의 명령을 이스라엘 사람은 어디서나 엄숙하게 실천한다. 룻기의 보아스를 보라. 더 가까운 친족이 있어서 법적 책임이 없었지만 보아스는 자애에 근거한 자원(自願)의 고엘이 되어주었다. 끊어질 뻔한 불우한 가문의 대를 이어주는 ‘축복 전달자’의 기회를 그는 놓치지 않았다. 흔들리는 가족의 결속을 도와준 일 때문에 보아스는 예수의 족보를 잇는 영광스런 다윗의 조상이 되었다.

이스라엘 사람은 지옥을 ‘타자가 없는 상태(Hell is the absence of other people)’라고 정의한다. 자신의 성취만을 위해 사느라고 타자를 살펴보지 못한 결과 자기가 속한 공동체가 병들어가는 상태를 지옥이라고 유대인들은 믿는다.

가정과 사회, 교회 공동체가 흔들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흔들리는 공동체를 다시 세울 뮌헨의 버스 안 무명 신사와 룻기의 보아스 같은 고엘러는 어디 있는가.

<김창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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