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문전박대

2017-07-07 (금) 고명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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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외갓집 양철 대문은 짙은 하늘색이었다. 집주인이 잠들기 전까지 문은 늘 열려 있었다. 열린 문으로 소달구지도 쉽게 통과하고 일꾼의 지게 짐도 거뜬하게 드나들었다. 대청마루에 서면 열린 문을 통해 너른 들판이 시야에 들었다. 어린 내 가슴에 가득했던 지평선 너머의 세계에 대한 뜻 모를 동경은 또 다른 호기심을 안고 문을 통해 돌아왔다.

이때쯤이면 이른 저녁 식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열린 문을 통해 외갓집으로 모여들었다. 대나무 평상에 자리가 다 차면 안방 문이 열렸는데 사람들은 일제히 열린 방문 쪽으로 자리를 고쳐 앉았다. 주로 어른이었지만, 어린아이도 더러 있었다.

주말에는 청년들까지 모여들었고 권투나 레슬링 경기중계가 있는 날은 마당을 거의 채울 정도였다. 늦은 밤 텔레비전에서 애국가가 울려야 동네 사람들은 대문을 나섰다. 그러고 나서야 양철 대문이 닫히고 밝다가 어둡다가를 반복하던 안방의 파란 불빛도 사라졌다. 동네에 하나뿐인 텔레비전은 문을 열어 놓았고 열린 문으로 끈끈한 인심을 불러들였다. 오는 사람이 발걸음을 돌릴까 봐 문을 활짝 열어두었던 외갓집 어른의 배려하는 마음을 뒤늦게 알았다.


게으름 늘어진 후덥지근한 오후 나절 예쁘장한 아가씨 둘이 환하게 웃으며 가게 문을 밀고 들어 왔다. 방학하고 봉사하러 나선 학생 같았다. 포교 목적이었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어서 남편은 “우리는 신앙생활 잘하고 있어요. 날도 더운데 학생들 수고가 많네요.”라고 말했다. 남편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던 그들 중 한 명은 “저희가 많은 곳을 방문하지만, 선생님 같은 분은 못 만나 봤습니다. 종교가 다르면 문전박대를 합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냉장고에서 요구르트를 꺼내 그들 손에 들려주었다. 예기치 못한 뜻밖의 호의라고 여겼던지 가게 문을 나서지 못하고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돌아갔다.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문은 빈집이거나 주인이 있어도 열어 줄 마음이 없는 것일 거다. 그렇다 한들 야박한 문전박대는 거의 없는 게 인지상정이다. 굳게 걸어 잠근 마음의 문은 황금 열쇠로도 열 수 없다. 따뜻한 마음과 친절만이 철옹성 같은 냉랭한 마음을 녹일 수 있다.

그런데 그 따뜻한 마음과 친절이 외면당할 때 조금도 틈이 없는 문을 만나게 된다. 요즘 정치 상황을 보아도 자기주장과 욕심만 차리는 듯하고 상대방 의중은 관심 밖이다. 내 눈을 먼저 감아버리니 멀리 보지 못하고 둘 다 넘어지고 무너진다. 내 문은 닫아 놓은 채 남의 문만 열려고 드니 부딪치는 소리만 요란하다. 모든 문은 열어젖히면 통하게 되어 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답답한 숨통도 트이게 마련이다. 이해하고 배려하다 보면 틈은 생기기 마련이다.

따뜻한 지방 대구에 살던 처자가 겨울이 긴 이곳으로 시집을 왔다. 갓 시집온 며느리는 두꺼운 옷을 입고도 방에서 나오지를 않았다. 방문이 항상 닫혀 있으니 마음의 문도 닫혀 있는 것만 같았다. 나에게도 며느리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 준비된 열쇠가 없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둡고 긴 터널 같은 날들이었다.

나는 나의 지난 실패담과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먼저 며느리에게 다가갔다. 귀를 열어두면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리고 마음을 열어두면 행복이 절로 굴러든다는 것을 그때 실감했다. 손을 내밀면 사랑이 열매를 맺고 아침을 반가이 맞으면 희망은 찾아들게 마련인가 보다.

“저희 왔어요.” 같이 휴일을 보내려고 며느리가 아들보다 먼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며느리가 처음 마음의 문을 열던 청포도가 익어가던 그해 7월 어느 날도 오늘만큼이나 훈훈하다 못해 뜨거웠다. 오늘 이곳의 유난히 드높아 보이는 하늘은 외갓집 양철 대문만큼이나 파랗게 활짝 열려 있다.

<고명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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