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과 다리를 소재로 한 고사(古史)가 동서고금을 통해 여러 가지가 있다. 조선시대 청계천에는 한양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스며있다. 특히 정월 대보름날 다리 밟기는 한양의 축제였다.
세시풍속을 기록한 ‘열양세시기’에는 “정월대보름 상원날 밤에 열두 다리를 밟으면 일년 열두 달의 액운을 없앤다 하여 공경귀인으로부터 여염의 시민들까지 다리 밟기에 나오지 않는 이가 거의 없다.
가마나 말을 타거나 지팡이를 끌고 나오는 사람들까지 거리 거리 메어지고 풍악과 음식이 사람 모인 곳마다 어지럽게 넘쳐났다. 해마다 임금이 친히 명을 내려 야간 통금을 해제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야간통금까지 없으니 청계천 다리를 둘러싸고 얼마나 많은 사건과 사연이 생겼을 까 싶다.
고대 로마시대를 무대로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말이 있다. 루비콘은 고대에 갈리아와 로마의 경계를 이루는 강으로 이태리 북동부에서 아드리아해로 흘러드는 강이다. 고대 로마는 원로원을 중심으로 공화정 체제로 통치되고 있었다. 로마 외 지역은 각 지역마다 임명된 총독이 다스렸고 만일 총독이 로마에 들어오려면 군대를 로마 밖 주둔지에 두고 수행원만 거느리고 들어와야 했다.
그 유명한 카이사르 시저(기원전 100년 7월12일~44년 3월15일)는 갈리아 지방의 총독으로 다른 나라와의 전쟁에서 연전연승, 로마시민들에게 최고 인기의 영웅이었다. 시저의 인기가 높아지자 원로원과 폼페이우스는 시저를 해임하려고 맨몸으로 로마로 입성하라고 통보했다.
이에 시저는 배신감을 느껴 군대를 거느리고 자신의 영지인 갈리아와 경계를 이루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 루비콘 강을 건넌 시저는 로마의 천년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황제가 되어 로마제국을 다스린다. 그러나 불과 5년 후인 기원전 49년 브루투스가 이끄는 공화정 복고를 원하는 원로원들에 의해 암살된다.
한국에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계인 한반도군사분계선을 가로지르는 다리로 1953년 휴전협정 체결 후에 이 다리를 통해 포로송환이 이뤄졌다. 포로들이 한번 다리를 건너면 돌아올 수 없다는데서 연유한 다리 이름은 원래이름인 널문다리를 무색케 했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을 반나절 앞두고 북한은 평안북도 방현기지에서 동해로 미국 본토까지 다다른다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시험발사했다. 이에 문재인대통령은 4일 “북,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지 말라”고 강력권고 했다.
미국은 현재 매우 엄중한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하고 4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정상회담후 공동성명에서 쌍중단(북한 핵·미사일 활동과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을 동시중단)·쌍궤병행(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평화체제 구축을 병행추진)을 발표했다. 그야말로 자국의 안보이익을 노리는 강대국의 흑심이 보인다.
북한은 왜 자꾸만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려 하고 루비콘 강을 건너려 하는가? 남북문제는 우리끼리 해결하자면서 왜 한국측 대화에는 응하지 않고 미국을 자극하여 미국과의 대화에서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는가.
지난달 24일 전북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 대회 개막식에서 문재인대통령은 내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남북 단일팀 구성 제안을 하여 북한의 참가를 공식제안 했었다. 이를 시작으로 끊겼던 남북 철도가 다시 이어지고 고령의 이산가족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가족상봉 기회도 마련하려 한다. 그러자면 남북한 대화가 절실하다.
일단 자주 만나야 화해를 하든 더 크게 싸우든 할 것 아닌가. 핵과 전쟁의 위협이 없는 한반도, 북한 미사일 소식에 뉴욕 한인들의 가슴이 더 이상 철렁거리지 않기 바란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 가 ‘자유의 다리’가 되자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기다려야 할까. 얼마나 많은 이의 한숨과 눈물이 강처럼 흘러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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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