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반도 시대정신

2017-07-05 (수)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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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조선 말기 왕들은 사회 혼란 속에서 시대정신(時代精神)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그래서 새로운 질서 속 에서 백성들의 주권을 확실하게 지켜 줄 수 없었다. 왕족정치가 전세계적으 로 무너지고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질 서가 지구상에 새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을 바로 보는 리더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대한민국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전히 표류하고 있는 느낌이다.

지난 반년동안 미국은 온 나라가 들 썩이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는,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상 황이 벌어졌다. 한국 또한 대통령이 탄 핵되는, 그야말로 온 나라가 내전 아닌 내전수준의 진통을 거의 일년간이나 어 마어마한 혼란과 아픔속에 겪어냈다.

그사이 주변강국들은 너도 나도 자 신들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어필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일본과 중국은 올해 초 이미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끝마친 상태였다. 그러다보니 트럼프 대통령 의 한반도인식은 아베 총리와 시진핑 주석의 편견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말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트럼 프 미국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마치 고 한미동맹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 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한미간 북핵 문제 공조에 대한 공통된 입장도 아 울러 밝혔다.

이번 공식발표에서 주목 할 부분은 대북정책 문제에 대해 한 국이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트럼 프 대통령에게 어필했다는 점이다. 북 한정권에 대한 인내는 이제 끝났다고 단언한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문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미국과 북핵 문제에 대한 단계적이고 포괄적인 접 근을 바탕으로 해결해 나가는데 뜻을 모은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헤겔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그 시대를 이끄는 정신인 ‘시대정신(Zeitgeist)’을 설파했다. 그는 그러한 시대정신을 현 실에 구현하는 사람을 진정한 리더라 고 하였다. 과연 지금 한반도의 시대 정신은 무엇이며, 이 시대에 부합되는 리더는 누구일까.

문재인 대통령은 과 연 그런 숙제를 풀 수 있을까. 이번 정상회담후 발표된 한미 양국 간의 공동성명에는 한반도 문제에 대 한 한국 정부의 주도적 역할이 명시 되었다. 이 성명에는 한반도의 평화 통일 환경에 관한, 대한민국의 주도적 역할을 인식하면서 인도주의적 사안 이 포함된 문제들에 대한 남북간 대 화를 재개하려는 문 대통령의 열망 또한 인지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견 해가 담겨 있다. 한반도는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와 같은 지정학적인 조건과 유사한 점도 있다. 하지만 이들 나라처럼 중립국이 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주변 강대국 들의 농간과 방해공작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약 70년전 북한의 침략으로 수 백만명을 죽음으로 몰고, 온 국토를 잿더미로 만든 6.25전쟁에서 북한을 도운 중국은 지금도 굳건한 한미동맹 관계를 질시하며 한반도의 사드배치 를 즉각 철회할 것을 강력 요구하고 있다. 러시아도 중국과 함께 한반도의 주도권을 놓지 않기 위해 미국과 팽팽 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이번 정상 회담에서 ‘피로 맺어진 한미동맹 미래 의심 없다’고 하지만 그럴수록 중 국과 러시아의 반발은 더욱 심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외교에서 의 한국주도권과 트럼프의 지지에 따 라 남북교류 및 과감한 대북대화를 재개한다는 계획이다. 더불어 발표된 정부의 남북개선 프로세스의 본격적 인 가동은 북핵협상시 남한이 제 목 소리를 내기 위한 포석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인도적 지원, 스포츠 민간 협력 등을 중심으로 한 남북 교류 시 도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북핵문제의 주도 적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런 면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의 열망과 성과는 충분히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지정학 이라는 것은 정치적인 수사로만 해결 될 수 있는 성질은 아닐 것이다.

과연 21세기 한반도 시대정신은 2,500만명 의 주민을 담보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 는 북한의 폭정 체제를 묵인하며 당 근을 제시하는 대화정책일까, 아니면 세계 최고의 인권 유린국가인 북한에 대해 채찍을 먼저 휘두르는 것일까? juyoung@koreatimes.com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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