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태양의 계절!

2017-07-03 (월) 연창흠 논설위원
크게 작게
어느덧 7월이다. 한 해의 반을 넘기며 새삼 세월의 빠름을 느낀다.
7월의 달력을 들여다보니 더위와 복(伏)이 줄섰다. 7일은 소서(小暑), 12일은 초복(初伏), 22일은 중복(中伏), 23일은 대서(大暑)이다.

작은 더위라는 의미를 지닌 소서는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절기다. 대서는 큰 더위를 뜻한다. 대개 중복과 비슷한 시기로 더위가 가장 심할 무렵이다. 때문에 옛날부터 대서에는 더위 때문에 ‘염소 뿔도 녹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더위를 피해 술과 음식을 마련하거나 계곡이나 물이 좋은 곳을 찾아 노는 풍습도 있다. 때때로 폭우가 잦은 때이기도 하다. 물론, 불볕더위도 바로 이 무렵이다. 소서와 대서엔 참외, 수박, 채소 등이 풍성한 철이다. 밀과 보리도 먹게 되는 시기다. 그래서 이때의 과일과 밀가루 음식이 가장 맛있다고 한다.


소서가 지나면 삼복지간이다. 7월엔 삼복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복날인 초복과 중복이 들어있다. 초복 시기는 소서와 대서 사이가 되므로 더위가 본격적으로 몰려오는 때라고 보면 된다. 초복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보양식이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보양식으로는 삼계탕, 장어구이, 추어탕, 육개장, 콩국수 등이 손꼽히고 있다.

중복은 대서와 비슷한 시기니 찜통더위가 한창기승을 부릴 때이다. 말복은 입추보다 4일 늦은 8월11일이다. 복날의 복(伏)자는 사람(人)이 개(犬)처럼 엎드린 모습이다. 굴복이나 복종의 뜻을 지닌 이유다. 삼복은 찬 가을의 서늘한 금(金)의 기운이 여름의 무더운 불(火) 기운에 눌려 무릎은 끓은 날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7월은 사람들이 땀을 흠뻑 흘려가며 무더위와 씨름하며 살아가야 하는 달인 셈이다 .

7월엔 햇빛이 더욱 강렬해진다. 그래서 한 낮의 열기를 식혀줄 휴식이 필요하다. 시원한 강바람, 산바람도 그리워질 때다. 때문에 학교는 긴 여름방학에 들어갔다. 회사들도 휴가를 제공한다. 작렬하는 태양아래 사람들이 자연 속으로 행복을 찾아 나서도록 하는 것이다. 에너지 넘치는 7월은 더위를 피하가 가장 좋은 휴가철이자 바캉스의 달인 것이다.

7월은 더위도 피하고 건강도 챙길 수 있는 보양식을 생각나게 한다.
옛 선조들은 더위에 지치고 병약해진 몸을 추스르기 위해 보양식을 즐겼다. 삼계탕, 육개장, 영양탕 등 탕 종류가 으뜸이었다. 무더운 더위를 뜨거운 음식으로 이기는 지혜를 발휘했던 셈이다. 바로 이열치열이란 말처럼 열로서 열을 다스렸던 것이다.

어릴 적에 어른들은 뜨거운 국물 때문에 이마에 흐르는 땀을 연신 팔소매로 훔치면서도 ‘아! 시원하다‘고 하셨다. 그 당시엔 뜨거운 것을 드시면서 왜 시원하다고 하시는 줄을 몰랐다. 뜨거움 속에서 시원함을 찾는 어른들의 행동이 그저 이상할 뿐이었다. ’여름에 땀 흘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을 때에 겨울의 추위를 면할 수 있는 것처럼‘ 이열치열 보양식의 참 지혜를 깨닫기까지 많은 세월을 보내야 했다.

7월 더운 철에는 이열치열이랍시고 허구한 날 땀을 뻘뻘 흘리며 뜨거운 국물만을 들이킬 수 없는 노릇이다. 무더위를 잊을 수 있는 시원한 국물이 생각난다. 거기에 보양도 할 수 있는 음식이면 금상첨화다. 그런 음식이 바로 콩국수라고 한다. 커다란 대접에 담긴 뽀얀 콩국수는 맛도 좋을 뿐 아니라 더위에 지친 심신에 활력을 주는 보양식이기 때문이다.

7월은 여름의 한 가운데다. 태양과 가장 가까운 달이다. 날씨는 점점 뜨거워진다. 한 낮의 찌는 더위에 나무가 마른다. 풀들도 시들어간다. 태양은 점점 붉게 타오르고 대지는 타들어간다. 하지만 푸릇푸릇하던 산들은 무성한 잎사귀를 자랑한다. 식물도 오히려 뜨거운 태양을 자양분으로 삼아 더욱 빨리 자라고, 온갖 식물의 열매와 곡식들이 여물어 간다. 태양이 가장 뜨거울 때에 어떻게 적응하느냐에 따라 생존의 명암이 엇갈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7월은 태양의 계절인 셈이다.

7월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다. 태양의 계절이라 몸과 마음이 지치기 십상이다. 그래서 충분한 휴식으로 무더위를 이겨야 한다. 보양식으로 건강도 잘 챙겨야 한다. 더위도 피하고 활력도 찾으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한해의 절반은 넘겼지만 아직도 절반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연창흠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