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통방구리’집

2017-07-01 (토) 김주앙/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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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SALE’ 그 싸인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렇게 그 빈 집을 보게 되었다. ‘아니 저런 집을 팔겠다고? 누가 저런 집을 살까…’ 그렇게 그 집에 대한 호기심은 솔솔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 집은 너무 낡아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았고 툭 치면 금방 무너져 내릴 듯했다. 게다가 집의 앉음새는 피사의 사탑 마냥 기우뚱 했고 크기는 한 주먹도 안 되게 작고 조그만 했다.

그것도 완전한 길가 집이다. 길 가 라는 게 복잡하기로 소문 난 P타운 ‘메인 스트릿’과 연결되는 가파른 언덕바지 길이었다. 숨차게 가파른 그 집 앞쪽으로 쉬어가듯 신호등이 있어 빨간 불이 켜질 땐 저절로 그 집을 바라보게 된다. ‘통 방구리’ 집. 비록 폐가와 같은 모양새의 집이었음에도 나는 그 집에 그렇게 귀엽고 예쁜 이름을 붙여 주었다. ‘통방구리’ 그냥 툭 튀어나온 말인데 맘에 들었다.

한국 사람들은 유난히 집에 대한 애착과 집착이 강한 편이다. 아니 좀 심하게 말하면 거의 광적이다. 어쩌면 집에 대한 관념조차 이곳 미국 사람들과는 인식 자체가 크게 상반되고 있다. 예를 들어, 몇 천달러짜리 집을 ‘렌트’계약 하고 이사를 했다 치자. 그럴 때 미국인들은 ‘이 집은 내 집이고 우리 집이다. 그러므로 내 집은 내가 관리하며 산다’ 그런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이 집은 남의 집이고 우리는 남의 집에 월세를 살고 있다. 그래서 그냥 살다 나가면 그만 이다’ 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몇 천달러 렌트비는 생자로 돈을 버리는 일이고 그 렌트비에 조금만 더 보태면 은행 모기지가 되니까 그래서 집을 사야 한다. 라는 계산법을 통용한다. 현실적으로 가장 잘못된 계산법 인데… 여기서 그 계산법에 대한 부연 설명은 생략한다. 한인들의 집에 대한 열망은 정말 대단하다. 집, 집, 집. 자나 깨나 오직 내 집 장만 생각뿐인 것 같다. 그것도 기왕에 아예 더 큰 집으로 가자 이다. 왜 우리는 그처럼 크고 화려한 고대광실 저택을 소원하는 것일까. 그것은 마치 삶의 목표와도 같은 맥락처럼…

와 드디어 통방구리 그 집이 팔렸다. 무심코 그 집 벽에 붙여진 ‘SOLD’ 싸인이 눈에 들어왔다. 놀랐다. 신호등이 파란불로 켜졌음에도 차를 움직일 줄 몰랐을 정도였다. SALE표지가 붙고 얼추 1년 반이 넘었나 보다. 신기하게도 그 집은 기어코 팔렸던 것이다. ‘절대 못 판다’에 한 표를 던졌던 관객 중 하나였던 나는 이제 관심을 접어야만 했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가고 아마도 두 석 달 만에 지나가게 되었나 보다. 마침 신호등이 빨강이다.

그런데 ‘통방구리’가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앗, 저거 닷!’ 하고 뱉어낸 놀라움은 바로 신음 같은 감탄사였다. 그 자리에 있던 그 집이 전혀 아니었다. 말 그대로 반전이었다. 지붕은 짙은 잿빛 서양기와로 바뀌었고 집 외 벽면은 연한 갈색 톤으로 점토가루(?)를 섞어 도톰하게 바르고 모래를 뿌려놓은 듯 세련미가 돋보였다. 일층 창문은 삼각 구도로 돌출되게 만들어 장식물을 창가에 배치했고 정문 위에 집 번호 디자인까지 예술이다. 다 쓰러져가는, 귀신이 나올 것 같았던 폐가였는데 그 집은 지금 동화 속 요술 공주 집같이 만들어졌다. 요렇게 예쁘게 집을 꾸민 집 주인이 또 궁금해 졌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들을 봤다. 그 집 사람들을… 아직은 겨우 걸음마를 띤 아들아기와 엄마 품에 안긴 여자아기 그리고 훤칠한 아빠, 새파랗게 젊은 하얀 사람들이다. 일부러 깜박등을 켜놓고 저들 너무 예쁜 가족들을 한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즐겁고 행복했다. 한 명 관객을 위해 저들은 무한대의 연출을 해 준 셈인데 꽃바구니라도 들고 그 집을 방문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서라 마서라 이다. 관객은 조용히 그저 사라지는 것이 그 한 길 인 것을…

<김주앙/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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