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면서 단 한 번도 화를 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분노(忿怒)라고도 불리는 화(anger)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화병에 걸리면 오래 살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도 하는 화. 한 번의 화를 참지 못하여 그동안 쌓아왔던 신용과 업적을 송두리째 날려 버리는 화병 환자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조금만 참으면 되는걸. 순간을 참지 못하고 폭발해 버리는 화. 일종의 병이다. 그래, 이런 병을 분노조절장애라고도 부르지. 의학용어로는 간헐적 폭발성 장애(Intermittent Explosive Disorder)다. 사전적 의미는 공격적 충동이 조절되지 않아 심각한 파괴적 행동으로 나타나는 경우를 뜻한다.
지난 13일 연세대학교 제1 공학관 4층에 자리한 김모 교수(47)의 연구실에서 사제폭발물이 터져 김 교수는 손과 목, 가슴부위에 화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피의자는 예의 바르고 성실했던 과학영재요 대학원생이었던 김모(25)씨로, 그가 분노조절 실패로 교수를 상해(傷害) 해야겠다는 무서운 선택을 한 것으로 판명됐다.
경찰진술과정에서 김씨는 평소 연구지도 과정 중에 질책하던 김 교수에게 화를 품었으며 지난 5월말 학술지에 실릴 논문 작성과 관련해 또 크게 꾸중을 듣고 범행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한 번의 분노조절 실패로 과학영재로 촉망받던 김씨는 평생 전과자의 빨간 틀 속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심리적으로 볼 때, 분노조절장애는 조금씩 쌓여왔던 분노가 어느 순간, 어느 지점에서 폭발할 때가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반대의 경우는 순간적인 분노폭발이다. 부부가 말다툼을 하다, 아님 부모와 자식 간에 언쟁을 하다 갑자기 발생되는 화로, 이 같은 분노조절 실패는 부부가 이혼까지도 갈 수 있고 부모와 자식사이엔 살인까지도 날 수 있다.
하지만 분노조절장애는 극복될 수 있다. 정신과 혹은 신앙상담이나 마음 수련 등을 통해서 극복된다. 분노조절장애를 극복하고 생애 첫 메이저 골프 타이틀을 거머쥔 멋있는 사례도 있다. 브룩스 켑카(27). 그는 지난 6월14일부터 18일까지 위스콘신주 에린에서 열린 2017년 유에스오픈 대회에서 최다언더 타이기록(16언더)을 세우며 챔피온에 올랐다.
켑카는 이 대회 상금으로 216만달러를 받았다. 그는 유소년 시절 골프계를 평정하며 입문했다. 그러나 그의 강한 승부욕은 오히려 악영향을 끼쳤고 그가 플로리다주립대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엔 정신과 상담을 받을 정도로 분노조절장애를 겪었다. 이 때 어머니의 유방암소식이 겹치며 그는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현재를 즐기자고 마음먹었단다.
분노조절장애를 극복하는 또 하나의 치유법은 캡카처럼 현재를 즐기는 거다.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닌 현재, 이 순간을 즐기는 거다. 골프를 치는 친구얘기다. 치다보면 땅을 찍거나 볼 대가리를 쳐서 점수를 망칠 때가 있다. 그럴 때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사람이면 골프채를 꺾어 버리거나 내동댕이치는 사람도 있다고.
골프채가 무슨 죄가 있나. 골프는 썸(같이 치는 사람)이 좋아야 하는데 함께 치는 사람 증 분노조절이 안 되는 사람이 있으면 그날 골프운동은 완전히 망쳐버린다. 한 사람이 화를 내고 온통 얼굴이 찌그러져 친다면 즐겁게 골프 라운딩을 해야 하는 옆 사람들은 지옥에서 골프를 치는 것 같이 마음이 온통 먹구름이 돼 버린다.
불교에서는 탐(貪), 진(瞋), 치(癡)를 3독(三毒)이라 하여 이를 버려야 생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 가르친다. 탐은 탐욕, 진은 분노, 치는 어리석음이다. 또 탐, 진, 치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화와 갈등의 원인이라고도 가르친다. 그렇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버리거나 멀리하는 인생이나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으랴.
조금만 참으면 될 텐데...살아있기에 그렇겠지만, 그래도 참아야 하고 또 참아야 한다. 어느 지인은 화가 나면 휘파람을 분다. 어느 교인은 화나면 주기도문을 왼다고. 아마 불교인은 반야심경을 외지 않을지. 분노조절장애는 병이 아니라 습관성일 수도 있다. 신용과 업적을 끝까지 유지하고 싶은가. 참아야 한다. 참으면 복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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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