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통령 보선(5월9일)보다 이틀 앞서 치러진 프랑스 대선에서 서른 아흡 살 젊은 마크롱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는 의석 하나 없는, 설립한지 1년도 안된 신생 정당의 당수다.
1958년 프랑스 제5공화국 출범 이후 60여 년 동안 정권을 주고받은 프랑스 거대 양당 사회당과 공화당은 일찌감치 대선 1차 투표에서 나란히 탈락했다. 유권자들은 무능하고 부패한 양대 정당을 모두 벌였다. 기득권 청산과 정치판을 새로 짜기를 원했다. 해외 유명 외신들은 프랑스 정당의 치욕, 프랑스 엘리트의 굴욕이라며 주목하고 있다.
완숙한 민주주의의 전범을 보는 것 같아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유권자들의 수준이 부러웠다. 이틀 뒤 환성과 탄식이 교차하는 가운데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 문제인 후보가 보선에서 당선됐다. 선거는 끝났지만, 후련하지가 않았다. 합법적인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아내고 지나친 갈등으로 나라가 두 동강이 나고, 극단적 언행이 두 진영 간 미움과 분열을 심화시킨 가운데 치러졌기 때문이다.
나라를 쪼개 놓고 집권하면 그 후유증은 새 대통령이 지게 될 텐데. 미움과 분열에 사로잡힌 국민을 끌고 가기 어려울 것이다.
박근혜 탄핵은 우파 쪽에서 보면, 위대한 국민승리 시민혁명이 아니다. 국민이 뽑은 존엄한 대통령이 한낱 평범한 아줌마와 비선에서 국정을 의논하고 농단했다는 사실이 국민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주고 배신감으로 크게 격분했다. 순간적으로 격앙된 감정이 박근혜가 밉다고 좌파이념과 결합해서 일으킨 집단 히스테리 성 다중집회였다.
박근혜 탄핵에는 한국의 실상과 의식문화가 극명하게 나타나 있다. 감정주의 극단주의 졸속 억지 집단 문화가 있고 분열성과 증오성의 발로였다.
프랑스에서 보듯 유권자들이 암묵적인 여론 형성으로 기성 정치권을 뒤엎은 민주 혁명과는 사뭇 다르다, 박근혜만 홧김에 몰아내 감옥에 넣었지, 국민이 가장 미워하고 염증을 느끼는 무능, 부패하고 패거리 정략에만 몰두하는 기성정치판을 갈아엎지는 못했다. 국민의 탄핵에 대한 집단기억이 앞으로 나라에 약이 될까, 독이 될까?
집권층이 전임 정권을 비난하고 끌어 내리고 적패 청산을 빌미로 부관 참시하는 방식으로 자기 정당성만 쌓다 보면, 그 탄핵의 기억은 60%에 가까운 반대편 민중 집단에 되살아나 다시 진영 싸움이 격화되고 광장여론이 국정의 정상적 흐름을 방해하리라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감정적 광장 정치를 조장하고 편승 이용하는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새 정권의 실패와 대통령의 불행이 반복 순환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진영 논리는 사물을 바라보는 눈을 흐리게 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적과 동지의 개념으로 재단하도록 한다. 내 편이 아니면 모두가 적이고 내 편이 되면 어떤 인물도 포용한다. 한쪽 패거리가 한미동맹을 강조하면 반대쪽은 반미 친 중국 패거리가 되고 한쪽이 재벌을 옹호하면 다른 쪽은 재벌을 적대시 한다
역사적으로 진영 간의 패싸움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야 끝난다. 조선조에서 사색당파 싸움으로 세월을 보내다 나라가 망하는 줄도 몰랐고, 이념이 다르다고 형제 친구까지도 대창으로 죽였던 6.25의 소름 끼치는 슬픈 역사를 우리는 갖고 있다
전 영국 수상 처칠이 이런 말을 남겼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지난 몇 차례의 불행한 대통령도 이러한 극단적 진영 간 패싸움의 희생자였는지 모른다. 이러한 자기 파괴적 정치생태계가 형성된 원인은 우리 국민의 정신을 지배해 온 두 개의 유산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는 6.25의 참담한 민족 상쟁을 겪고 분단상황이 오래 계속되면서 반공의 편견이 정치이념화 되었고, 다른 하나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와 김대중, 노무현의 환생을 꿈꾸는 사람들의 집착이 서로 대립하며 정치 유산으로 자리매김한 데 기인한다.
돌이켜 보면 좌와 우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 이 두 세력은 모두가 엄청난 일을 해냈다. 오늘날 세계가 찬사를 보내고 부러워하는 10대 경제, 민주 강국 대한민국을 이들 두 세력이 만들어 냈다. 그 과정에서 잘못이 일부 있다면 모두의 책임이다.
국가의 안위보다는 조직 패거리의 안녕과 공고한 일체감이 더 중요한 정치 풍토에서는 이성과 야성을 겸비한 큰 인물이 나타날 수가 없고, 상식과 이성이 통하고 법치가 엄격히 시행되는 선진 민주국가로의 발전을 기대 할 수 없다.
이제 망국적 패싸움은 여기서 종식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가오는 아주 기이한 미래에 모두가 공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대내외 국정 위기, 국민 마음속의 깊은 상처와 신뢰의 위기, 세계 정치 경제 지형의 급반전 속에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여건에서 한국의 국정을 한 사람, 한 패거리가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이제는 여러 정치세력이 힘을 모어 국정을 원만히 운영하는 분권과 협치로 난국을 극복해야 한다.
문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생략)을 들으니 다행히 안심이 된다. 대략 국민 통합 공존을 언급하고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문제인 후보를 찍지 않은 60% 가까운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던 안보와 협치, 통합문제를 우 편향으로 해결하겠다는 선언이다.
대통령이라 해도 정치인의 말이라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으나 앞으로 희망을 갖고 지켜봐야겠다. 취임하자마자 시행한 몇 명 청와대 측근 인사나 광주 5.18행사에 참석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추모객과 합창하는 모습은 당황스러웠고 미덥지가 않았다. 그러나 행정조치를 발동해 미결된 현안을 유연하게 풀어 나가고 있다. 첫 뚜껑을 연 새 정부 인사는 대체로 인물 중심 탕평인사로 호평을 받고 있다. 새 정부의 첫 출발은 산뜻하다.
새 정부가 탐탁지 않은 이들도 조금은 시간을 갖고 지켜봤으면 좋겠다.
끝으로 한국이 낳은 최고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가 보선에 앞서 가진 인터뷰에서 한 말을 소개 한다. 이는 우리 모두의 바람이기도 하다.
“바흐의 하모니는 기가 막힌다. 바흐의 하모니를 국민화합으로 응용 할 수 있는 리더가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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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준/비영리단체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