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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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앞에 서다

2017-06-17 (토) 고영준/아트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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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저지 자문위원 글마당

2016년 그림의 위작 논란으로 한국이 시끄러울 때였다. 뉴욕의 크리스티에서는 일주일 동안 단색화를 주제로 기획전을 열어 이우환 화백의 ‘바람’을 소개했다. 한국에서의 소란이 꼭 다른 세상 이야기라도 되는 양 이곳 뉴욕에서는 화백의 작품이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대가라고 부르는 분들이 만들어낸 작품들은 일반사람들의 감성에 일정부분 감동과 감흥의 영향력을 주는 듯 하다.

그러한 이유에서인지 내 눈앞에도 계속 아른 거리는 ‘바람’은 내 일상 생활과 디자인 활동에까지 적지않은 영향을 끼친다. 이것이 대가들이 만들어낸 힘인가 ? 아니면 그분의 작품과 비교되면서 내가 느끼는 천재에 대한 열등감인가? 아니면 나 스스로에게 느끼는 자괴감인가?

내가 본 이우환 화백의 바람은 작은 작품으로, 전시공간을 차지할 만큼 크지 않았다. 하지만 캔버스 위에 표현된 바람이 작은 캔버스를 벗어나 넒은 시공간으로 뛰쳐 나오려는 듯한 느낌이었다. 성난 모습으로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댈 것 같았다. 순간 순간, 때로는 얌전한 순풍같고, 때로는 심통난 돌개바람 같고, 또 어느 때는 성난 태풍같았다. 작품은 이렇게 여러 바람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들의 마음 안에는 이우환 화백의 바람에서 표현된 것처럼 다양한 종류의 바람이 들어 있다. 그래서 한결같은 바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그것을 알기에 나는 본능적으로 바람의 길로 가는 것을 머뭇거린다. 내 안에 있는 많은 슬픔들이 요동치며 나를 잠식하고,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쌍한 사람인양 코스프레를 하면서 사람들의 측은지심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가 하면 기쁨들이 나를 취하게 만들어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나의 기쁨을 다행이라 여기는 이기적인 마음도 있다.

이렇게 다른 마음들을 하나의 그릇에 담아 지나치지 않게 잘 다스리는 것을 습관화하라는 아리스토델리스의 중용의 도리, 이것이 이우환 화백의 바람을 통해 내가 배운 귀한 가르침이다.

대가의 그림을 보는 것은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작가의 고뇌, 치열한 삶, 그 과정을 통해 정제된 인생의 철학과 통찰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삶의 명확한 지표가 없이 방황하는 우리 범인들에게 등대의 불빛 같은 중요한 지침서가 되고, 또한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없어서는 안될 귀한 자양분이 되리라 믿는다.

<고영준/아트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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