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만날 때면 흔히 내가 받아본 질문중에 몇 가지 공통되는 질문들이 있다. 그중에는 꼭 “어떤 여성을 롤 모델로 이름 할 수 있나요?”가 들어 있다.
나 역시 여러 한인들이 겪는 어려움과 시행착오, 또 잘못이나 실수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늘 그것을 도전을 요구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기에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은퇴후, 요즘 나는 그리고 인생의 여백 같이 소중한 시간을 통해 내 나름 그 도전의 시간들을 짚어 보기 시작했다. 어려서 부터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중 나의 삶을 바꾸어 놓은 시작은 이화여고 시절 동기인 강경화와의 만남이었다.
어느 날 나는 교정에서 교장선생님이 외국인들을 에스코트하면서 하는 대화를 강경화가 동시통역 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신기한 광경에 한참을 그들 뒤를 쫓았었다. 그후 나는 강경화가 The Korea Herald 주최 영어 웅변대회에서 대학생들과 성인들을 물리치고 당당하게 우승을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당시 The Korea Herald는 영자 신문으로써 영어를 공부하거나 유학을 꿈꾸는 학생들에게는 잘 알려진 신문이었다.
강경화의 멋진 도전에 감명받은 나는 스스로 도전하기로 다짐하고, 서울 YWCA에서 있었던 영어 웅변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입상을 하지 못했다. 그때 받은 심사평은 “안타깝지만 웅변대회인데 목소리가 너무 작았고 부드러웠다.” 였다. 발전하려고 했지만 나는 지금도 여전히 작고 부드러운 목소리의 소유자다.
그날 비록 나는 입상은 못했지만 슬프거나 부끄럽지 않았다. 새로운 세계를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훗날 저런 여성이 되어야지 하며, 내게 도전의 기쁨을 맛보게 한 강경화에게 감사했고, 동기지만 존경하게 되었고, 또한 YWCA의 여성과 인권활동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 후 고맙게도 나는 뉴욕 퀸즈YWCA의 회장직까지 역임을 하게 되었다.
퀸즈 YWCA는 이미 2005년에 그녀를 기조연설자로 초청, 당시 400여명의 참석자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었다.
강경화는 오늘도 도전한다. 그녀가 과연 외교부 장관으로 임명을 받게 될지는 모르지만, 확신하는 것은 그녀가 지금까지 여성과 인권활동을 통해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일을 감당하며, 특히 많은 젊은이들과 여성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감사한다. 강경화, 그녀가 이 시대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
민금복 퀸즈YWCA 전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