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끝없는 사랑

2017-06-10 (토) 전미리 /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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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귀는 새 소리와 창틈으로 세어드는 자스민(인동초)향기가 나의 새벽잠을 깨운다. 어머니를 그리다 보니 어느새 아버지날이 다가온다. 인동초를 말려서 한약제로 섞어 쓰시던 아버지. 달랑달랑 발을 굴리며 장고를 치시던 아버지의 모습 등이 보이는 듯하다.

아버지의 장고 치는 실력은 프로급 이다. 젊은 시절 평양권반(기생학교)에서 배운 실력으로 마을의 어른들과 함께 들놀이하면서 흥을 돋우신다. 아버지는 나에게 여자의 순결한 정조관과 정직, 선함의 도덕성을 강조하며 가르치셨다.

노년기에 미국에 이민 오신 아버지와 나는 밤늦도록 함께 많은 애기를 나누었다. 댕기머리 땋고 서당에서 글공부하던 시절, 그 서당 훈장의 딸과 결혼한 얘기, 호랑이 나오는 골짜기에서 밤마다 백일기도 끝낸 얘기, 왜정때 사업가로서 약종상 등으로 부유했던 얘기 등, 감동적인 아버지의 경험담을 많이 들려주시며 부귀영화 잠깐이고 헛된 것이니 욕심내지 말고 기쁘고 즐겁게 살라고 당부하셨다. 잠 잘 자리 있고 배고프지 않으면 웃고 살라고 ‘기쁘고 즐겁게’를 항상 반복하셔서 아버지의 유언처럼 내 머리에 각인되어 있다.


어린 시절 나는 부모님을 속상하게 한 일이 있었다. 국제시장(부산) 외제 물건 파는 가게에서 빨간 운동화를 보았다. 나는 이 운동화를 신고 싶어서 엄마를 졸랐다. 검은 운동화를 신어야하는 학교 규칙 때문에 엄마는 사 주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울기 시작했다. 저녁에 시작한 이 울음이 얼마나 길었던지 시끄러워 잠못자겠다고 언니들이 한 번씩 꿀밤을 먹였다. 드디어 울다가 지쳐서 나도 잠이 들었다.

아침에 언니가 약을 올렸다. “새벽까지 울지 왜 잠이 들었니?” “흥! 나는 영도다리에 가서 물에 빠져 죽을 래!” 소리 지르며 집을 나왔다. 다리 밑을 내려다보니 검푸른 바닷물이 무섭기만 했다. 갑자기 그 빨간 운동화가 아른 거렸다. 나는 운동화가 아직 팔리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광복동을 지나 국제시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운동화는 아직 진열대에 있었다. 운동화를 만지작거리는 나에게 주인아저씨는 말했다. “아가야 때 탄다. 돈이 되거든 오너라” 하면서 먼지를 턴다.

배가 고파서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 아버지가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었다. 어머니는 밥상을 차리시고 아버지는 “네가 좋아하는 미국노래(50년대 팝송) 도너쓰 판(작은 레코드판) 사 왔다고 건네주시며 운동화 살 돈까지 주셨다. 어머니는 내가 숙제를 할 때면 “미리야! 가만히 부르면서 방문을 살며시 열고 인절미 두개가 담긴 접시를 들여놓는다. 그리고 조용히 문을 닫는다.

이것이 사랑인 줄을 그때는 몰랐다. 그 어머니 보고 싶을 때면 산소를 찾아간다. 무덤위에 넙적 엎드려 어머니와 허그를 한다. 무한대의 사랑! 영원한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은 이 세상 어떤 사랑과도 비교할 수 없다. 만약에 부모가 살아 돌아오신다면 부모님을 훠스트(First)로 모시고 싶다.

이제는 추억뿐인 부모님 사랑이 뭉클하게 쏟아지는 아버지날에 나는 아카시아 꽃 하얗게 날리는 향긋한 공원길을 조용히 걸어 보련다. 걸음마다 기쁘고 즐겁게! 기쁘고 즐겁게! 기쁘고 즐겁게!

<전미리 /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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