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텃밭이 주는 행복

2017-06-05 (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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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도 텃밭에 물을 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집 뒤뜰에 일궈 놓은 텃밭에 오이, 고추, 상추, 쑥갓, 가지, 방울토마토 등을 심고 정성스레 가꾸고 있다. 얼갈이배추, 부추, 미나리 등은 이미 싱싱함을 자랑하고 있다. 텃밭은 계절에 따라 온갖 작물들이 자라는 공간인 셈이다.

지금은 번듯한 텃밭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6년 전 약대에 입학하는 막내딸의 등교편의를 위해 이사 올 때만 해도 뒤뜰은 풀밭이었다. 이사 온 첫해부터 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삽과 호미를 들고 풀밭으로 향했다. 풀을 뽑고, 나무뿌리를 캐내고, 크고 작은 돌을 거둬냈다. 삽으로 땅도 수차례 뒤집었다. 비료로 깻묵을 뿌리기도 했다. 텃밭이 모양새를 갖추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직장에 출근하는 탓에 새벽시간을 활용했기 때문이었다.

이사 첫해 봄을 맞아 텃밭 농사를 시작했다. 애초에 농사라고 지어본 일이 없었기에 인터넷을 스승으로 모셨다. 텃밭 농사를 하고 있던 지인들에게 귀동냥도 했다. 그해 4월 하순께 모종을 사다 심었다. 오이, 고추, 들깨, 방울토마토 등을 사왔다. 모종을 심은 지 며칠 후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다. 새벽에 텃밭에 나갔더니 모종이 몽땅 얼어 죽었다.


의욕적으로 시작한 첫 농사가 자연의 이치 앞에 무너져 버렸다. 아무 때나 모종을 심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얻었다. 흙에 씨를 뿌려놓고 싹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하는 농부의 마음도 그 때 알게 됐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정직한 마음 말이다. 텃밭을 가꾼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던 시절이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텃밭농사 6년차가 됐다. 채소와 작물을 심는 때를 잘 알고 있다. 직접 농사지은 깻잎, 쑥갓, 상추 등을 따다가 삼겹살 파티를 즐기는 베테랑 도시농부(?)가 됐다. 이젠 하루하루의 삶에서 텃밭이 없는 생활을 상상할 수도 없을 지경이 된 것이다.
요즘도 아침이면 동이 트기 전 일찌감치 텃밭에 나간다.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가지치기도 한다. 텃밭에 물을 주며 시작하는 하루는 상쾌하다. 싱그럽기 이를 데 없다. 밭을 가꾸면서 삶도 달라졌다. 가꾼 대로 거둔다는 농부의 정직한 마음도 배웠다. 농번기에는 열심히 일하는 농사짓는 이들의 마음도 알게 됐다. 농한기에는 다음해 키울 작물들을 고민하는 마음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물을 키울 때 중요한 것이 애정과 관심이란 것도 터득할 수 있었다. 잘 자랄 수 있게 틈틈이 물을 주고, 퇴비도 주며 정성껏 가꾸는 이유다.
요즘 텃밭 일은 주로 풀을 뽑는 것이다. 온몸을 땅바닥으로 낮춰 풀을 제거하는 일은 힘들다. 그렇지만 즐거움도 동반한다. 장갑을 끼지 않고 일을 하기에 손끝에 느껴지는 흙의 촉감이 부드럽다. 코끝은 간질이는 풀냄새도 마냥 상큼하다. 문제는 김을 매고 돌아서기가 무섭게 풀이 자란다는 것. 농사가 아니라 풀과의 전쟁이다. 요즘이 그렇고 여름이면 더욱 심해진다. 그렇다고 제초제를 뿌릴 수는 없다. 우리가족이 먹고 지인들에게 나눠줄 것이기에 풀을 뽑아야한다. 손톱에 흙이 들어가고 엄지와 검지에 굳은살이 생겨도 아랑곳하지 않는 이유다.

뒤뜰 텃밭에는 고추, 상추, 쑥갓, 방울토마토, 가지, 신선초, 얼갈이배추 등 각종 쌈 채소가 자라고 있다. 쑥, 부추, 미나리, 파, 마늘 등도 무성하다. 텃밭 주위로는 오이와 호박이 그물망에 오를 채비를 하고 있다. 아침마다 아기 손가락만한 오이가 팔뚝만큼이나 커질 것을 상상하면 마음마저 풍성하다.

자기가 기른 채소를 매일 식탁에 올려 먹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 게다.
쌈장에 찍어 먹는 고추, 쌈을 싸서 먹는 상추, 쑥갓과 실파. 새벽에 물을 주러 나와 바로 따서 먹는 방울토마토와 오이. 그것이야말로 사다 먹는 맛과는 천양지차다.

어디 그뿐인가? 정성껏 가꾸어 싱싱하고 토실토실하게 잘 자란 야채들을 지인들에게 가져다주면 언제나 환영이다. 그런 맛을 즐기고, 그런 맛을 지인들과 나눌 수 있는 것이 바로 행복이다. 텃밭은 신선한 채소와 과일은 물론이고 생활 속에 소소한 행복을 덤으로 얻을 수 있는 공간인 셈이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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